유진룡 “김기춘 따귀 때릴 것같아 청문회 안나갔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그때 그 사람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3년 10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문화융성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김기춘(왼쪽) 대통령 비서실장,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불출석했던 유 전 장관은 27일 “김 전 실장의 뺨을 때리는 사고를 일으킬 것 같아 출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뉴시스

장관 재직시절 비화 폭로

“김 前실장 뻔뻔한 위증 보고
아는 것 밝혀야 한다고 생각

朴대통령 ‘관피아 청산’ 담은
세월호 담화 발표한 다음날에
金 ‘자니윤 감사에 임명’ 지시

블랙리스트, 문체부에 전달돼
김 前실장이 리스트 주도한듯”

박근혜 대통령이 해경 해체 같은 중요한 정부 조직 개편을 국무위원들과 상의하지 않고 발표한 뒤 이의 불합리함을 지적하자 크게 역정을 냈다는 것이 당시 국무위원에 의해 밝혀지면서 박 대통령의 불통정치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7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박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는 토론이 없었다”며 “국무위원들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 것을 토론이라고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 후임으로 김기춘 비서실장이 들어서면서 청와대의 소통 부재가 더 심각해졌다고 주장했다. 김 실장이 부임한 뒤 몇몇 수석 비서관들이 수석회의에서 발언을 했다가 그에게 불려가 호되게 질책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유 전 장관은 이날 오후 방송될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사전 인터뷰에서도 이 같은 내용을 상세히 밝혔다고 전했다.

유 전 장관은 2014년 5월 관피아 청산 등을 선언한 박 대통령의 세월호 대국민 담화 발표 다음 날 김 전 실장으로부터 방송인 자니윤을 한국관광공사 감사에 임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이날 밝혔다. 유 전 장관은 관광정책과 전혀 관계없는 자니윤을 임명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자니윤에게 관광공사 상임 홍보고문을 제안해 동의를 받았으나 김 전 실장으로부터 왜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고 질타를 받았다고 했다. 이후 자니윤은 관광공사 감사에 임명돼 ‘보은 인사’ 논란이 일었다.

유 전 장관은 이날 최순실-김종 전 문체부 제2차관-김 전 실장의 연결 고리에 대해서도 밝혔다. 유 전 장관은 재직 당시 김 전 차관으로부터 인사 청탁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그는 당시 김 전 차관의 인사청탁이 적합하지 않은 데다 “설사 자신이 수락을 해도 청와대 공직인사위원회에서 통과될 수 없다”고 하자 김 전 차관이 그건 자기가 해결하겠다고 말했다고 기억했다. 김 전 차관의 인사청탁을 거절한 다음날 김 전 실장이 전화를 해왔다는 것이 유 전 장관의 기억. 그는 “김 전 실장이 전화를 했을 때 해당 인물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 김 전 실장이 당황하며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유 전 장관은 청문회에 나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나 역시 이 같은 상황을 막지 못한 죄인인데 남들 보는 앞에서 서로 잘했네 하며 공개적으로 남의 죄를 고발하는 모습이 유쾌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가 혹시 나갔다가 김 전 실장을 보면 따귀를 때리거나 하다 못해 뒤통수를 때릴 수 있는 사고를 일으킬 수 있겠다고 생각해 자제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같은 사실을 언론에 밝히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김 전 실장의 뻔뻔한 위증을 보고 “제가 아는 진실을 밝히는 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특검의 (문체부에 대해) 정식 수사로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에 제가 아는 것을 말씀드리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문체부 출신 첫 문체부 장관을 지낸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문체부 조직이 위기에 빠진 것에 대해 무척 가슴 아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대다수의 공무원들은 양심적이고 정의롭다”며 “내부 고발자들을 보호하는 문화 풍토가 공직 사회에 정착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유 전 장관은 전날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퇴임 한 달 전 문화예술계 블랙 리스트를 직접 봤다며 리스트를 주도한 사람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지명하긴 힘들지만 합리적 의심을 한다면 김 전 실장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는 정무수석비서관실이 작성했고 당시 모철민 교육문화수석과 김소영 문화체육비서관이 문체부로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계 블랙 리스트는 오랜 시간을 두고 업데이트된 것으로 문화예술계 인사 9000여 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의 초기 내각에 참여했던 유 전 장관은 청와대와 갈등을 빚다가 2014년 7월 16일 면직됐다.

박경일·최현미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