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안창마을 백광숙… 늘 20년 함께 한 할배·할매·아이들 생각”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루미네 수녀가 지난 16일 부산 동구 안창마을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8년만에 휴가 내 찾아온 ‘부산 달동네 聖女’ 루미네 수녀

“한국을 떠나서도 항상 안창마을과 할배, 할매,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다시 이분들을 만나니 너무 반갑죠.”

부산의 대표적인 달동네인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에서 20년간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아이들을 돌보다가 떠났던 루미네(75·독일) 수녀가 8년 만에 정들었던 부산을 찾았다. 루미네 수녀는 보름 동안 휴가를 보내며 안창마을 주민들과의 뜻깊은 상봉을 하고 있다. 그는 ‘푸른 눈의 성녀’ ‘열두 아이의 엄마’로 불렸다.

루미네 수녀는 지난 16일과 10일 각각 안창마을 ‘루미네수녀기념관’과 범일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주민들과 사회봉사단체의 환영행사에서 그동안의 소회를 밝히며 추억에 젖었다. “나는 안창 백씨의 ‘백광숙’”이라고 소개한 그는 “8년 만에 꿈에 그리던 분들을 다시 만나게 돼 너무 기쁘고 고향에 온 기분”이라고 말해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회색 치마에 흰 블라우스 차림의 수녀는 참석자들의 손을 일일이 맞잡고 안부를 물었다.

지난 1972년 천주교 부산교구 언양 본당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가 7년 만에 독일로 돌아간 루미네 수녀는 한국 아이들을 잊지 못해 1989년 다시 한국으로 왔다. 그는 “가장 못사는 동네 중 하나인 안창마을을 소개받아 방 한 칸짜리 판잣집을 구해 공부방을 시작했다”며 “세 살짜리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 12명과 함께 먹고 자며 가족처럼 살았다”고 회상했다. 아이들뿐 아니라 독거노인, 장애인, 알코올 중독자, 무기력하고 실의에 빠진 사람 등의 삶 속에서 자신을 낮추며 이름(루미네)처럼 안창마을의 ‘빛’이 됐다. 그는 2009년 마셜제도로 선교활동을 떠났다가 8년 만에 귀향한 것이다.

당시 무허가 건축물이었던 이 공부방은 그룹홈 시설인 ‘우리들의 집’으로 성장해 지역 아동센터로 운영돼오고 있다. 현재까지 거쳐 간 아이들만 1100여 명에 이르는 이 공부방은 10일 25주년 축하 행사가 열려 더욱 뜻깊은 하루가 됐다. 루미네 수녀는 “‘우리들의 집’이 25년 동안 계속될 수 있도록 힘써주신 많은 수녀님과 신부님, 지역 주민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루미네 수녀님이 너무 보고 싶었다”며 아이들이 준비한 축하 공연과 기념 영상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는 “지금 마셜제도 파푸아뉴기니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내 고향은 그곳도 독일도 아닌 한국 안창마을”이라고 덧붙였다. 부산 동구는 2015년 12월 루미네 수녀를 위해 안창마을에 기념관을 건립해 그의 옛 사진과 책 등을 전시하고 마을공동체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현재 부산 금정구 성심 수녀원에서 지내고 있는 그는 오는 25일 일단 독일로 귀국한 뒤 7월 25일 다시 마셜제도에서 봉사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부산=김기현 기자 ant735@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