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개미?… 사실은 인간 수준의 사회성 지녔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베짜기개미의 일개미떼가 서로의 몸을 물고 물어 체인처럼 만든 후 집이 될 나뭇잎을 나란히 끌어당기고 있다. 사회적 곤충의 협동 노동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이언스북스 제공

초유기체 / 베르트 횔도블러·에드워드 윌슨 지음, 임항교 옮김 / 사이언스북스

먼저 쉬운 것부터. 개미·벌 등 무리 지어 생활하는 동물을 사회적 곤충이라고 한다. 지구상에는 약 1만4000종의 개미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 약 90만 종의 곤충 세계에서 종수(種數)로는 2%에 불과하다. 그러나 생물량으로는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종수에 비해 개체 수가 훨씬 많다는 뜻이다.

인간에게 친근한 개미나 벌은 그동안 이야기의 단골 소재였다. 대표적인 게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다. 부지런한 개미와 게으른 베짱이의 구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출세작 ‘개미’(1991)도 유명하다. 개미의 세계를 개미의 시각에서 사실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하게 묘사해 화제를 모았다. 1998년엔 일개미 플릭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픽사의 애니메이션 ‘벅스 라이프’가 인기를 끌었다. 약자인 개미가 덩치 크고 포악한 메뚜기를 협동의 힘으로 물리친다는 메시지를 보여줬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토록 작고 보잘것없는 생명체에 오랫동안 주목하게 만든 걸까. 이제부터 난이도 중간 단계. 해답은 개미와 벌의 사회성에 있다. 1㎝도 안 되는 길이, 1㎎에 불과한 뇌 크기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곤충들은 진사회성 단계의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진사회성이란 진보된 사회성으로, 사회성 단계의 가장 높은 수준을 말한다.

책의 역자인 임항교 미국 메릴랜드 노트르담대 교수는 “인간처럼 사회성을 가진 동물을 결속력에 따라 분류하는데 극단적으로 조직된 사회를 진사회성이라고 한다”며 “진사회성을 가진 동물은 약 2만 종이 있으며 이 중 대다수가 개미다. 이 책의 주요한 성과는 대부분 개미 연구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진사회성을 충족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 군락 안에서 개체들이 철저히 역할을 분담하고, 노동에 헌신하는 개체가 두 세대 이상 함께 존재해야 한다. 개미나 벌은 엄격한 노동 분담을 하고 있고, 생존과 번식이 여러 세대에 겹쳐서 나타난다. 이쯤 되면 사회적 곤충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 시작할 것이다. 개미가 실은 인간 수준의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새삼 놀라게 된다.

생물학 분야의 저명한 연구자인 에드워드 윌슨과 베르트 횔도블러가 사회적 곤충에 주목한 이유도 이와 같다. 하찮은 미물에 불과해 보이던 개미와 벌이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쳐 고도의 사회성을 갖게 됐는지, 집단을 위한 일개미의 희생과 꽃꿀의 위치를 알려주는 벌의 8자형 꽁무니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가 이 책의 관심사다.

난이도 최상급 단계. 바로 여기서 책의 제목이자 핵심인 초유기체(Superorganism)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초유기체란 수많은 일벌이 각자 역할을 나눠 맡듯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개체, 군락 전체를 일컫는다. 생물학적 분류 체계에서 볼 때 개체보다 한 단계 위의 대상을 말한다. 임 교수는 “개미나 꿀벌의 군락에 대해 개체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도 기능적 특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초유기체란 용어를 사용했다”며 “은사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개미제국의 발견’(1999)에서 명명했던 ‘초개체’와 같은 개념”이라고 말했다. 책은 저자들이 1990년 발표한 ‘개미’에서 주장한 집단 선택이라는 고전적 진화이론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기 위해 2009년 쓴 것이다.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 펴낸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유전자 선택론을 들고나온 것에 대한 대척점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런 연구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하는 것이다. 임 교수는 “이 연구가 인간 사회에 직접적 교훈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험적 증거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과학적 시각을 확장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책은 집필에만 5년이 걸렸고, 번역에 또 8년이 소요됐다. 저자의 지명도, 진화 연구의 범위와 실증적 성과만 보더라도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하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