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손 실종·僞作 논란… 古미술품 가격 ‘바닥으로’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 고미술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다보성 갤러리에서 애호가들이 자기류 전시대 앞에서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문화재급 작품들 잇단 폭락
2000년대 초반 5억대 작품
반값도 안되는 가격에 매매

리움·호림 등 큰 손들 떠나고
미술애호가들 서양화로 쏠려
국내외 시장서 ‘저평가’ 추락

조선전기의 분청자류죽문매병 500만 원, 분청자인화문호 500만 원, 고려시대의 흑유음각엽문 ‘주일신’ 명병 1500만 원…. 지난 주말 서울 종로구 인사동 다보성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고미술 특별전’에 전시된 작품들의 가격이다.

‘문화재급’ 작품이어서 가격들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고미술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고미술 경기가 좋을 때인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이 작품들의 가격은 조선 전기의 두 작품은 3000만 원대에 거래됐고, 검은빛을 띤 고려시대의 ‘흑유’ 병은 7000만 원을 호가했었다. 이뿐 아니다. 고가품 중의 하나로 2억 원에 전시 중인 고려시대의 청자인 청자상감국화문표형주자의 원래 시가는 5억 원대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물론 가격이 내려간 데는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고미술 애호가들이 모두 서양화 쪽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에 대해 고미술 관계자들은 두 가지 이유를 든다. 우선 고미술계의 ‘큰손’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기서 ‘큰손’ 중의 하나는 리움미술관을 운영 중인 ‘삼성가’를 말한다. 고미술업계에선 리움이 최소한 ‘연간 1000억 원대’ 고객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역시 고미술 전문박물관인 호림박물관을 세운 윤장섭 회장이 지난해 세상을 뜨며 리움 못잖았던 ‘큰손’마저 역시 활동을 멈추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위작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고미술품의 위작 시비는 1980년대 들어 미술품이 투자의 대상이 되면서 생기기 시작했고 1990년대 들어 거의 연례행사처럼 언론을 장식해왔다.

위작은 고서화, 도자기, 철물 등 거의 모든 고미술품에서 나타나고 있다. 고서화의 경우 미술품 경매 시장 등에 가보면 단원 김홍도나 겸재 정선의 그림이 의외로 저렴한 사실에 놀라는 일이 많은데 작품 출처와 유통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만큼 리스크가 큰 작품이어서 생긴 일이다. 한국에서 만든 가짜 고미술품이 중국으로 흘러나갔다가 북한에서 출토된 진품으로 포장돼 다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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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박수근 등의 근현대 작가 그림이 점당 30억∼50억 원을 호가하는 데 반해 삼원·삼재(三園三齋:장승업·김홍도·신윤복, 정선·심사정·조영석)의 그림은 점당 아무리 비싸도 10억 원을 넘지 못하고 있다.

도자기도 마찬가지다. 2011년 런던의 한 경매에서 청나라 건륭제 때의 도자기 ‘길경유여(吉慶有余) 무늬 투각호’가 973억5500만 원에 거래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 도자기의 경우 1996년 10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백자철화운룡문호가 841만 달러로 당시 환율 약 70억 원에 팔린 것이 최고가 기록이다. 그만큼 한국 고미술이 저평가돼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고미술 전문가들은 요즘처럼 고미술품 가격이 떨어졌을 때가 ‘컬렉션’ 적기라고 입을 모은다. 투자 측면에서 볼 때 고미술품이 분명히 국내외적으로 저평가 돼 있고, 언젠가 시장이 되살아나면 그만큼 시세차익을 볼 수 있다. 물론 위작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선 작품의 유통 이력을 명확히 확인하고, 한국화랑협회나 고미술협회 산하 감정위원회에서 진위 감정을 분명히 받아야 한다.

한편 고미술 시장을 살리기 위해선 제작·형성된 지 50년 이상 된 고미술품의 해외 유통을 규제하는 문화재 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종춘 한국고미술협회장은 “국보·보물급의 해외 유출은 강력히 규제해야 하지만 50년 전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해 비교적 가치가 낮은 고미술품까지 함께 규제해 해외컬렉터들이 우리 고미술품을 외면하는 등 유통시장이 경직되고 있다”며 “규제를 어느 정도 풀어줘야 시장 활성화는 물론 우리 고미술이 국제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