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노점상 생존권이냐, 시민들 보행권이냐

- 서울 곳곳서 노점 정비 충돌

상반기만 2558건 강제정비
노점측 “박원순 말로만 상생
현실성 없어… 前시장 판박이”

서울시 “대로 침범땐 불가피
全노점 제도권 포섭 첫 시도”

지난달 29일 오전 6시 서울 마포구 지하철 아현역. 3번 출구를 따라 이어진 굴레방길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곳에선 지난해 8월 지역 명물이던 ‘아현동 포장마차 거리’가 강제로 사라졌고, 이날은 남아있던 노점에 대한 철거가 예정돼 있었다.

이곳에서 40년간 채소 장사를 했다는 정모(88) 할머니는 백발 위로 붉은 머리띠를 둘렀다. 정 할머니는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이곳에서 노점을 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길을 넓히겠다며 쫓아내려고 한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날 철거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노점상들은 철거 인력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며 불안해했다.

아현동 외에도 서울 곳곳에서 노점 철거가 진행 중이다. 동작구 지하철 이수역과 용산구 용산역 인근의 노점은 이미 대부분 철거가 이뤄졌다. 중구 명동 롯데백화점 앞에서는 수시로 노점과 철거 용역 사이에 크고 작은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앞 노점 등도 관할 구청에서 자진 철거를 권유하며 ‘행정대집행’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에서만 2558건의 ‘강제정비’가 이뤄졌다. 강제정비는 노점 전체 또는 일부를 철거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등 행정력을 동원하는 것을 뜻한다. 반면 같은 기간 노점상에 대한 취업알선과 생계지원 상담은 16건뿐이었다. 특히 실제로 지원이 이뤄진 건 4건이 전부였다. 이 기간 서울시가 징수한 과태료는 2억3214만 원에 달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노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노점상의 생존권과 시민의 보행권 사이에 가치 충돌이 생기고, 개발 업자와 지역 주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까지 얽혀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13년 12월부터 환경 디자인 전문가와 노점 단체 등을 모아 ‘거리 가게(노점) 상생정책 자문단’을 만들었다. 지난 7월에는 노점 관리에 대한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하는 등 노점을 제도권에 포섭하려고 했다. 초안에는 △신규 개설 및 자녀 승계 금지 △지역 제한 △재산 기준 등 노점 영업 관련 규정이 담겨있다.

하지만 노점 단체들은 “가이드라인에 현실성이 없다”며 반발했다. 민주노점상연합(민주노련)은 이미 2년 전에, 전국노점상총연합(전노련)은 지난달에 자문단을 박차고 나갔다. 권병덕 전노련 사무국장은 “가이드라인 초안에는 그동안 노점 단체들이 제안한 원칙과 현실적 기준 등이 포함되지 않았고, 과거 오세훈 시장 때 정책을 복사해 붙여넣기한 것 같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성태 민주노련 정책국장은 “박 시장이 상생 자문단을 만들기는 했지만, 구체적 액션은 없는 등 오 전 시장 시절과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 전 지역의 노점을 제도권 안에 포섭해 마음 놓고 운영하도록 제도화하려는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라며 “다만 보행권을 지나치게 침범하는 노점 등에 대해선 철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나온 가이드라인은 초안으로 앞으로도 (노점 관리에 대한) 일방통행 없이 노점 단체들과 잘 협의해 상생하는 길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