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3월의 겨울올림픽’과 선진국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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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 경희대 교수 평창패럴림픽 홍보대사

1994년 뉴욕의 어느 공원에서 22세 청년 빅터 컬리즈는 산악자전거를 타다가 핸들 너머로 고꾸라지면서 나무에 부딪혔다. 이 사고로 그는 척추를 다쳐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됐다.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척수협회에서 일하면서 장애스포츠를 시작해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에 아이스하키 미국 대표선수로 참가했다. 그는 2012년 뉴욕시 장애인담당국장으로 임명돼 현재도 일하고 있다. 2015∼2016년 장애인권리협약 의장을 맡았던 필자는 컬리즈 국장을 자주 만났다. 그는 사고 당시를 회고하면서 “장애를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살겠다고 마음먹은 이후에는 오히려 장애가 제 인생에 저주 아닌 축복임을 깨달았습니다”라고 말했다.

2주일 후 우리나라에는 수백 명의 컬리즈가 전 세계에서 모여든다. 평창에서 제12회 동계패럴림픽이 열리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15% 정도인 약 10억 명이 장애인으로 간주된다. 의아스럽겠지만, 60세 이상 인구의 46% 정도가 한 가지 이상의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유엔의 통계를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장애는 선천적으로, 또는 사고에 의해서만 생기는 게 아니고,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삶의 어느 단계에서는 겪게 마련인 현상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어느 특정 부류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 이 시점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최소한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우선, 우리 사회에서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노력이다. 국제적으로 볼 때 유럽이나 북미에 장애 선진국이 많은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 외에 장애인 인권과 관련해 적극적인 역할이 두드러진 지역은 중남미가 꼽힌다.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선뜻 거론되지 않는 것은, 이들 지역에선 대체로 장애인을 돌보는 것이 사회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가족의 책임이라는 전통적 인식이 강하다는 점이 이유라고 본다.

다음으로, 장애인이 사회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접근성(accessibility)은 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다. 예를 들자면, 근시가 장애로 간주되지 않는 것은 안경이라는, 간단하지만 매우 효과적인 보조수단이 발명돼 접근성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모든 대중 장소에 근시용 좌석을 따로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접근성 확대에 있어서도 사회적 고려가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용 휠체어를 구입할 때 정부가 상당한 보조를 해 주지만, 휠체어 접근로가 확보되지 못해서 갈 수 없는 곳이 많다면 큰 효과가 없을 것이다. 몇 년 전에는 계단이 많은데 경사로나 승강기가 없어서 동행한 휠체어 사용자를 들어서 옮겨야 했던 공공시설 안에, 큼직한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것을 보고 실소한 적도 있다. 휠체어가 어디든 갈 수 있고, 방송마다 자막이 나와서 청각장애인도 즐길 수 있고, 신호음의 유도로 시각장애인도 거리를 활보할 수 있어야 동등한 사회 참여가 가능해진다.

6개 종목에 80개의 금메달을 놓고 경쟁하는 평창패럴림픽은 45개국에서 670명의 선수가 참여하는 사상 최대 규모다. 장애 유형에 따라 입식, 좌식, 시각장애 등 게임이 세분되고, 최종 결과에 장애등급(장애의 정도)이 반영되기도 하는 겨울철 패럴림픽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오는 3월 9∼18일 경기 기간 중 하루쯤은 자녀들을 데리고 평창, 강릉, 정선의 경기장으로 가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