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두 정상회담과 두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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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 경희대 교수, 前 駐유엔 대사

한·미 아닌 김정은 眞意가 문제
‘核포기’ 쪽이면 압박 효과 입증
그러나 훨씬 큰 대가 요구 할 것

핵·경제 竝進 고수 가능성 여전
장기전 벌이며 제재 숨통 겨냥
어느 쪽이든 대응책 치밀해야

오는 4월과 5월로 예정된 남북,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 상황에서 두 정상회담 의제로 북한 핵(核) 문제가 핵심이 될 것은 분명하다. 남북 교류·협력이나 미·북 관계 개선이 모두 핵 문제 해결과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남북과 미·북 두 정상회담을 앞두고 추측이 난무하는 것은 한국과 미국의 입장이 궁금해서가 아니다. 한·미는 북한이 우리 특사에게 전한 대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고 협상에 나설 것을 요구할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어떤 입장으로 회담에 나올 것이냐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5일 대북 특사단에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한 말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났을 때 어떻게 구체화할지 예측이 쉽지 않다. 가장 중요한 점은 북한의 비핵화 의사에 진정성이 있는가이다. 두 가지 경우를 모두 생각해 보자.

먼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있는 경우이다. 북한이 6차례의 핵실험을 포함, 20년 넘게 개발해 온 핵무기를 일정한 조건이 충족될 경우 포기하기로 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적절한 보상을 취하고 포기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해석도 있지만, 그랬으면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사상 최강의 국제 제재와 압박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지난해에만 4차례 강화된 유엔의 대북 제재는 수출의 90%와 석유류 수입의 50%를 봉쇄하고 있어 이런 압박을 오래 버틸 수 있는 나라는 없다.

그렇다고 북한이 조건 없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핵 포기에 대한 보상을 최대한 확보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1994년의 제네바 합의가 이행됐더라면 한국과 일본은 모두 5조 원 정도의 보상을 하게 돼 있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의 경우 우리나라가 최종적으로 부담해야 할 이행 경비가 11조 원 정도일 것이라는 추정이 있었다. 이것은 모두 북한이 아직 핵무기를 손에 넣기 전의 상황이었으므로, 이번에 비핵화 협상이 이뤄진다면 북측은 더욱 큰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군사적 위협의 해소와 체제 안전’을 어떻게 요구하고 나올지도 예단하기 어렵지만, 9·19 공동성명에서 미국이 약속했던 평화 공존, 불(不)공격, 관계 정상화와 같은 조치들이 핵 포기의 상응 조치로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는 경우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할 시간을 벌기 위해 대화에 나섰다는 해석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리히터 규모 6.3의 초강력 핵실험을 하고 3차례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한 후 지난해 11월 ‘국가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한 북한이다. 그런데 왜 시간이 더 필요한지부터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이 정도에서 핵·미사일 실험을 중지하고 다른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려 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북한이 설사 제재를 견디기 어려워 대화에 나왔다고 해도 핵 보유와 경제발전을 함께 추구하는 이른바 병진(竝進)정책을 포기했다는 보장은 없다. 핵 포기를 제외한 모든 전향적인 조치를 함으로써 돌파구를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핵·미사일 실험 중지를 약속하고, 억류 중인 외국인들을 석방하고, 대외 개방적인 정책들을 발표함으로써 미국과 한국의 입장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을 수도 있다. 즉, 비핵화 협상은 장기적 과제가 되게 하고, 우선 제재 완화를 통해 숨통을 틔우려 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있든 없든 두 정상회담은 의미가 있다. 진정한 비핵화 의사를 가지고 있을 경우, 김정은 위원장은 한·미 정상을 모두 만남으로써 비핵화의 대가를 최고위급에 직접 요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실무협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현실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핵 포기 의사가 없는 경우에도, 한·미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협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바로 북한의 진의(眞意)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협상의 종착점에 있어야 할 최초의 미·북 정상회담이 시작점에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모든 당사자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그러한 결단들이 한반도에 평화의 봄을 가져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