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참을 忍’ 세 번과 어느 재벌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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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경희대 한방신경정신과 교수 火病전문가

분노조절장애와 격분증후군
같은 火病이나 행동은 달라

동의보감 “분노는 臟器 손상”
세네카 “분노는 狂氣로 간다”

억눌린 분노 쌓이면 폭력 유발
가진 자의 갑질 분노 더 나빠

2018년, 분노를 억지로 참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최근 어느 기업 총수 일가처럼 분노를 엉뚱하게 폭발시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20년 전만 해도 분노는 무조건 참아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이른바 ‘참을 인(忍) 자가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

화병(火病)의 정의는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오랜 기간 참으면서 발생하는 질병’이다. 참아서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치받는 신체적 고통을 주로 호소하게 된다. 그런데 화병의 정의도 환자의 유형이 달라지면서 바뀌었다.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참거나 폭발하면서 나타나는 질병’으로, 분노의 폭발에 주목한다. 화병이 신체 증상을 주로 호소하는 병에서 정신 증상, 특히 행동 증상이 두드러지는 병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주로 여성, 나이가 많은 사람, 주부, 사회적인 약자에게 특화돼 설명됐다. 하지만 요즘은 남성, 젊은 사람, 직장인이나 학생, 사회적 강자에게서도 쉽게 관찰된다.

예전 화병클리닉에서의 상담 장면이다. 억울함을 참아서 화병이 된 사람에게 억울함을 표현하는 것이 화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어떻게 화를 표현하는 것이 좋을지 대화를 했다. 남편과 싸우는 법도 상담의 주제가 될 정도였다. “참아서 병이 된 것입니다. 너무 참지는 마세요.” 하지만 요즘은 사뭇 다르다. 화를 감정대로 표현하면 이차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참을 수 있는지 설명을 한다. “화를 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죠. 특히, 순간적으로 폭발하게 되면 이후에 다시 후회하게 됩니다.”

이렇게 분노 표출 형태의 화병이 많아지면서, 그동안 우리 문화에서는 크게 다루지 않았던 병명이 화병을 대체하고 있는 듯하다. ‘분노조절장애’ 또는 ‘외상 후 격분증후군’ 같은 것이다. 분노가 병의 특성인 것은 화병과 같지만, 행동 양상이 두드러진다.

외상 후 격분증후군은 ‘정신적 고통이나 충격 이후에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믿음에 근거해 증오와 분노의 감정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장애’다. 부당함·모멸감·좌절감·무력감 등은 화병과 유사하지만, 격분과 울분으로 폭발하고, 이것이 폭언이나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차이가 있다. 분노조절장애는 ‘충동적인 분노 폭발형’과 ‘습관적인 분노 폭발형’으로 나눌 수 있으며, 전자가 분노를 유발하는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후자는 분노를 폭발하는 것에 대해 경험적으로 학습하면서 습관화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화병이 외부 원인에 의해 나타나는 문제라면 이 장애는 개인의 성격이나 습관과 연관이 더 깊다.

분노는 기능적인 감정이다. 기능적이라 함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자신의 생존 전략이 되는 것으로, 그 감정을 드러내야 더 심한 고통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말해 어쩔 수 없이 드러내야 하는 감정이란 것이다. 그러나 분노는 분개·울분·원한·골·짜증·난폭·공격성·노여움·미움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적개심·공격성·충동과 연관된다. 그래서 로마 시대의 철학자 세네카는 “분노는 광기(狂氣)로, 분노보다 더 신속하게 미치게 하는 것은 없다”고 했고, 동의보감에서도 ‘모든 감정은 사람에게 손상을 주는데, 그중 분노가 가장 심해 인체의 모든 장기(臟器)를 손상한다’고 했다.

화병 환자들에게서 드러나는 분노는 그동안 억눌릴 대로 억눌린 상태에서 더는 견디지 못해 발생하는 생존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몸과 마음이 더불어 힘들어지면서 나오는 절박한 분노다. 신체 증상도 많아서 분노를 낸 이후에도 고통은 이어지고, 분노 이후에 그보다 더 큰 상대방의 분노 역시 감내해야 한다.

그렇지만 분노조절장애의 분노는 사소한 자극에도, 때로는 일정한 시간 이후에 자동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분노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드러낸 이후 성취를 경험하면서 획득된 경우라면 더 자주, 습관적으로, 또 점점 강도가 세지면서 드러난다. 더구나 이 분노를 드러낸 이후에 자신에게 아무런 고통이 없다면 그 분노는 학습되고, 더 강화된다. 문제를 해결하는 강력한 무기가 돼 버리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미 분노 사회가 됐다는 여러 보도가 있다. 다툼이 많고, 소송이 많고, 이것이 점차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가진 자들의 분노 폭발이다. 분노를 표출하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을 일찍이 경험한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노를 습관적으로 터뜨리게 된다. 그들의 분노는 너무 쉽다. 습관적이기도 하고, 이를 통해 쾌감을 느끼기도 하고, 분노를 풀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시 자신의 생활로 돌아오면 그뿐이다.

분노는 억울하고 분한 사람들이 풀어내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이어야지,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감정이 돼선 안 된다. 그것은 기능적으로 자연스러운 분노가 아니라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화가 난다면 다음 ‘체크리스트’로 점검해 보길 권한다. 자신의 분노가 단지 억울함과 분함에 대한 기능적인 감정의 표출인지, 아니면 습관적이고 충동적으로 질러 버리는 폭력인지를.

―습관적으로 분노하는 게 아닌가?

―분노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느끼는가?

―분노 이후 되려 마음이 편해지는가, 심지어 분노 이후 쾌감이 느껴지는가?

―분노하면서 상대방에 대해 생각하는가?

―분노하면서 주위의 물건을 집어 던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