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삶의 기본 ‘醫·食·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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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경희대 한방신경정신과 교수 火病 전문가

욕구 한없이 팽창하는 현대인
불안도 역시 비례하여 깊어져

기본적인 생존·안전 보장돼야
소속감 생기고 자아실현 가능

먹고 살고 사는 문제 흔들리면
다른 노력 모두 무너지게 마련

나이가 들어 병원을 방문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갑작스럽게 늘어나는 진료비로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보험이 잘 되어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생애 주기별 의료비 현황을 보면 나이가 들수록 의료비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이러다가 큰 병이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지? 나이가 들면서 불안에 젖어 있는 환자를 종종 만나게 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많이 모아둬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든다.

한창 꿈과 희망이 넘쳐야 할 청소년과 병원에서 만나는 일도 많아졌다. 신체적인 이상이 아닌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배우고는 있지만, 무엇을 선택함에 있어서, 100세 시대를 살아야 하는 처지니 우선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저변의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 그런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N포세대’처럼 포기하거나, 애써 ‘YOLO족’(한 번뿐인 인생을 마음껏 즐기는 사람)처럼 현재의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회 현상을 만난다.

클리닉에서는 이처럼 정작 현재의 고통이나 질병이 아닌,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을 점점 더 많이 만나게 된다.

노년을 위해 얼마를 준비해야 하는가? 매우 명확하고 현실적인 질문이기는 하지만, 답을 내놓긴 쉽지 않다. 자신이 언제까지 살 것인지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스스로 100세까지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도리어 100세까지 사는 것이 싫다고까지 대답하기도 한다.

100세 시대를 앞에 두고, 60세에 일을 그만두는 사례를 보더라도, 연봉 1억 원의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아온 사람이 그러한 삶을 지속적으로 누리며 살고 싶다면 80세까지 살 때 산술적으로 20억 원, 100세까지 산다면 40억 원의 돈이 은퇴하는 시기에 있어야 한다. 30대부터 일을 하면서 벌어왔던 돈보다도 많은 돈을 미리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런 삶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불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불안은 환경과 욕구의 편차에서 비롯된다. 현재의 열악한 환경도 문제지만, 40억 원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욕구도 불안을 만든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욕구가 크지 않으면 만족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도 욕구가 지나치면 불안해진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욕구는 한없이 팽창하고 있으니, 이에 따라 불안도 비례해 깊어지게 된다. 더구나 욕구 충족이 한쪽, 한 계층으로 편중되면, 불안 역시 다른 한편에서 뚜렷하게 심해진다. 이렇게 되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욕구를 조절해야 하고, 사회에서는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환경이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기본적인 생존의 필요조건인 먹고(食), 살고(住), 사는(醫) 데 대한 안정이 불안을 안정시키는 최소한의 장치가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의·식·주(醫食住)가 흔들리고 있다.

일본의 경제학자가 한국을 방문해 가장 놀란 것이 음식값이라고 한다. 맛있고 싼 음식을 먹기 위해서 일본에 간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점심값이 7000원, 8000원을 훌쩍 넘으니 먹는 것에서도 불안이 생긴다. 살아야 할 집은 생활공간이 아닌 노후 자금을 마련하는 역할로 자리 잡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일하는 공간은 값이 계속 올라 일을 아무리 해도 세(貰)를 따라가지 못한다. 안정되게 살아야 할 공간이 도리어 불안을 만들어낸다. 나이 들어 병원을 가면 진료비가 껑충껑충 뛴다. 젊은 시절에 비해 회복도 느리고, 심각도도 더 높다. 그러나 의료비는 예측할 수가 없다. 얼마까지 모아 놓아야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을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의·식·주에 대한 불안은 삶의 기본 요소에 대한 불안이기 때문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존의 욕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가장 밑바닥의 불안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이 밑바닥에 있기에, 우리는 앞의 예처럼 40억 원도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더 많은 욕심을 부리게 된다.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1943년에 발표한 논문 ‘인간 동기의 이론’(A theory of human motivation)을 통해 ‘욕구 5단계’ 피라미드를 설파한 바 있다. 인간 욕구의 단계에 대한 설명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 자아와 존중 욕구, 자아실현 욕구로 점차 단계가 올라갈수록 불안이 높아지면 우리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라는 가장 낮은 단계의 추구에 머물러 있게 된다. 생존과 안전이 보장돼야 소속감이 생기고, 서로를 이해하고, 자아실현에 이를 수 있다. 마음속 깊이 깔려 있는 불안이 없어져야 그다음 욕구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자아실현, 자아 통합이라는 인생의 욕구를 향해 살아가고 있다. 실현과 통합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환경과 욕구를 통합해 자신의 삶 속에서 이를 실현하는 작업이다. 이것은 건강하게 늙어가는 과제이기도 하다. 신체적으로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 놓기 위해 자신의 건강을 지켜야 하고, 잘 먹고, 잘 자야 한다.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읽고, 사색하고, 명상해야 한다. 자신의 모습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환경에 맞춰 내려가기 연습도 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의 환경은 근본적인 불안을 줄이는 장치 마련을 필요로 한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보장돼 있지 않으면 다른 노력은 매번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살고(醫), 먹고(食), 사는(住) 문제는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할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