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과 박정희… 평생 동지이자 경계 대상인 애증의 관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풍운의 정치인’ JP 최근 모습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2세. 이로써 김대중·김영삼·김종필 트로이카가 이끌어왔던 ‘3김(金)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 김종필 전 총리가 지난 4월 18일 신당동 자택에서 자유한국당 이인제 충남지사 후보를 만날 때 모습. 2018.6.23 [연합뉴스 자료 사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풍운의 정치인 JP 별세 (서울=연합뉴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고 김 전 총리가 1971년 당시 박정희 공화당 총재(오른쪽)로부터 부총재 임명장을 받는 모습. 2018.6.23 [연합뉴스 자료사진]

JP, 끝까지 朴에게서 등 안 돌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생전 그의 증언록에서 ‘사모님을 빼고 누가 가장 생각나냐’는 질문에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그는 “나는 18년간(1961년 5·16∼1979년 10·26) 박 대통령을 요지부동하게 뒷받침해 드렸다”고 했다. 그만큼 둘은 한국 현대사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였고, 김종필 전 총리의 삶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빼놓고 설명이 불가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김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에게 조카사위이자 5·16 동지, 평생 경계해야 할 2인자였다.

둘의 만남은 1949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육사 8기를 졸업한 김 전 총리는 육군본부 정보국 장교(소위)로 배속됐고, 이곳에서 작전정보실장인 박 전 대통령과 처음 마주했다. 군부 내 남로당 조직책 혐의로 군법회의에서 사형 구형을 받았다 극적으로 회생한 박 전 대통령은 군복을 벗고 정보국 문관(文官)으로 일하고 있었다. 김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을 “참 키가 조그맣고 얼굴이 새카만 첫인상”이라고 회고했다.

1951년 김 전 총리가 박 전 대통령 형인 박상희씨의 딸 박영옥 여사와 결혼하면서 둘은 처삼촌과 조카사위 관계를 맺었다. 이후 김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의 든든한 협력자이자 기획자로서 역할을 했다. 김 전 총리는 1960년 2월 ‘16인 하극상 사건’으로 불리는 정군운동으로 구속됐을 때도 박 전 대통령에 해가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강제 예편을 감수했다.

5·16은 두 인물이 역사의 정점에 서는 순간이었다. 김 전 총리는 거사 도모 기간은 87일이라고 했다. 5·16을 실질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한 주체는 김 전 총리로 알려졌다. 그의 증언록에 따르면 5·16 석 달 전 박 전 대통령을 만나 “이제는 혁명을 해야겠다”고 제안하자 박 전 대통령은 “그동안 나도 이런 때가 오리라 생각하고 나름대로 준비를 해왔다”고 했다. “한강 이북은 자네가 맡아라. 그 이남은 내가 맡겠다”(박 전 대통령)는 지시도 떨어졌다. 김 전 총리의 나이, 겨우 35세의 일이다.

5·16이 성공한 뒤 김 전 총리는 배후에서 궂은 일을 도맡았다. 장도영 최고의장을 제거하고 부의장이었던 박 전 대통령을 의장으로 옹립한 인물 또한 김 전 총리였다. 그 뒤로도 김 전 총리는 헌법 개정과 공화당 창당 등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김 전 총리는 박정희 정권에서 초대 중앙정보부장(1961), 공화당 의장(1962), 국무총리(1971) 등에 올랐다.

하지만 김 전 총리의 역할이 커질수록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총리를 견제했다. 자신을 대통령의 자리에 올린 만큼, 끌어내릴 수 있는 힘 또한 김 전 총리가 가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1962년 3월 3일 관련 보고서는 “군사평의회 지도자 박(박정희)은 커져 가는 김(김종필)의 권력을 줄이기 위해 지금까지 송(송용찬 당시 내각수반)을 지지해 왔다”고 적고 있다. 김 전 총리는 박정희 정권 하에서 가택 수색을 3번이나 당할 정도였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이 권력 집착이 극에 달한 10월 유신(1972) 쯤부터 이미 김 전 총리와의 관계는 예전 같지 않았다. 이전 해 10·2 항명 파동 당시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총리가 자신의 자리를 노린다고 생각했고, 김성곤 의원 등 김종필의 사람들을 모두 정계에서 퇴출시켰다. 김 전 총리는 유신 작업에서도 철저히 소외됐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 김 전 총리의 ‘요지부동한 뒷받침’이 마감한 순간이다. 그러나 계속된 견제에도 김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에게 항명으로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언급은 남기지 않았다.

유민환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