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조국·사랑·봉사… 마지막 황태자비는 칠보로 새겨넣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칠보 작업에 여념이 없는 생전의 이방자 여사. 고은당 제공

내달3일부터 ‘이방자 작품전’

회화·도자 포함 200여점 전시
칠보기술 전수 등 장애인 지원

“내게는 두 개의 조국이 있다. 하나는 나를 낳아준 곳이고/ 하나는 나에게 삶의 혼을 넣어주고 내가 묻힐 곳이다./ 내 남편이 묻혀 있고 내가 묻혀야 할 조국/ 이 땅을 나는 나의 조국으로 생각한다.”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李方子·1901∼1989) 여사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이방자, 일본 이름 나시모토미야 마사코(梨本宮方子)는 1901년 일본 황족으로 태어나 열여섯에 조선 황태자 이은(1897∼1970)과 결혼했다. 당대에도 그는 ‘정략결혼의 희생자’ 정도로 취급받았으나 두 나라의 관계나 왕족 간의 관계가 아닌, 한 남자의 아내로 11세에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온, 영친왕이라고 불리던 조선의 황태자 이은을 조용하고 세심하게 내조했다.

1962년 우여곡절 끝에 일반인의 신분으로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온 그는 ‘또 하나의 조국’ 한국에서 신체장애인을 위한 지원에 발 벗고 나섰다. 창덕궁(昌德宮) 낙선재에 기거하면서 1971년 수원에 정신지체아 교육시설인 자혜학교와 1982년 신체 장애아 교육시설 명혜학교를 광명시에 세워 운영했다.

지체아와 장애아를 돕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타고난 예술적 재능을 십분 되살려내는 것이었다. 이 여사는 일본에서 배운 칠보 기술로 서울칠보연구소를 설립, 신체장애인의 재활과 가난한 한국 젊은이의 자립을 위해 기술을 전수했다. 또 장애인 돕기 기금 마련을 위해 칠보, 서예, 수예, 도자기, 그림 등 본인이 직접 만들고 그린 작품들을 자선바자 등에서 판매했다.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가 만든 것인데다 작품성마저 뛰어나 날개 돋친 듯 작품은 팔려나갔다.

이 여사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가 열린다. 고미술품 전문 갤러리인 고은당(02-735-2573)은 10월 3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작품전’을 연다.

전시에는 회화 50점, 서예 18점, 도자 34점, 칠보 32점, 기타 35점 등 모두 200여 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작품은 고은당 대표인 정하근 씨가 30여 년에 걸쳐 수집한 것들이다. 칠보로 만든 한복이나 흉배(사진), 족두리, 비녀 등의 작품이 특히 눈길을 끌며 남편을 그리워하며 그렸던 ‘한매쌍작도’ 등 귀한 작품이 선보인다. 그림은 이당 김은호와 월전 장우성 등 근대의 내로라하는 화가들을 사사한 것이어서 수준급이다.

전시를 앞두고 만난 정하근 대표는 “일본에서 기념관을 짓고 싶다며 계속 연락해오고 있는 마당에 막상 한국에서는 남편의 조국을 자신의 조국으로 알고 큰일을 하신 분이 잊히고 있어 안타깝다”며 “비록 몰락한 왕조의 왕비였지만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한국 사람을 사랑해 장애인들을 50년 가까이 돌봤다는 사실, 그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만든 작품들이지만 그 자체로 예술성이 높다는 점 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