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fty+ >잘나가던 PD, 知天命에 변호사 변신… “인생을 가두기 싫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2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화우 사무실 앞에서 올해 변호사로 첫발을 내디딘 이용해 변호사가 팔짱을 끼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법무법인 화우 이용해 변호사

25년 ‘영상콘텐츠’ PD 생활
불새·올인… 필모그래피 화려

20년 넘게 하니 재미 없어져
석사학위 받으려 로스쿨 지원

청바지 벗고 정장 입고 일하니
생각 포멀해지고 책임감 커져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 싫어
‘막힐때 길 열린다’ 가슴 새겨

요즘 나이 50이면 젊다. 하늘의 명을 알기(知天命) 때문에 오히려 20∼30대보다 더 열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시행한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화우 사무실에 만난 이용해 변호사가 딱 그랬다. 이 변호사는 67년생 양띠로 올해 쉰하나다. 이 변호사는 지난 25년간 ‘잘나가는’ 영상콘텐츠 프로듀서(PD)로 살다가 4월 제7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뒤, 최근 법무법인 화우에 합류해 화제를 모았다. 청바지를 입고 수염을 기르던 그는 이제 넥타이를 매고 안경을 쓴다. 이 변호사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기자가 질문할 새도 없이 열정적으로 그간 삶의 궤적과 앞으로의 포부를 설명했다.

“원래 문학평론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영문과(서울대 영어영문학과 86학번)에 들어갔지요.” ‘꿈이 변호사였나’라는 질문에 돌아온 의외의 답변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대전 지역 인근 8개 고교가 연합한 영문학 동아리(ULES)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근데 대학에 들어와 보니 천재들이 너무 많았어요. 대학 2학년 때 시인으로 등단한 친구도 있고요. 그런 친구들을 보며 상대적으로 제가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영화가 좋아져서 자주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당시 새롭게 주목받던 PD에 관심을 갖게 됐지요. PD는 영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법학 교양 과목은 하나도 안 들었다. 당시 사법시험은 법대생 외에는 잘 응시하지 않는 분위기였단다. 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1993년부터 SBS에서 제작본부 PD로 활동하며 ‘좋은 친구들’ ‘이홍렬 쇼’ ‘SBS 인기가요’ 등 예능 프로그램과 ‘행진’ ‘LA아리랑’ ‘오렌지’ 등 시트콤을 연출했다. 이후 초록뱀미디어 제작본부 본부장으로 MBC ‘불새’와 ‘주몽’, SBS ‘올인’ 등 드라마 제작에 참여했다. 2010년부터는 메이콘텐츠 대표이사를 지내며 E채널 ‘용감한 기자들’, tvN ‘두 번째 프러포즈’ 등을 제작했다. 누구나 알만한 성공한 프로그램들이 잔뜩 그의 필모그래피에 올라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PD 시절 촬영장에서 현장을 지휘하는 이용해 변호사의 모습. 이용해 변호사 제공

“20년 넘게 하니 재미가 없었어요. 새로운 걸 하고 싶었어요. 가끔 대학에 방송 제작 특강 같은 걸 나가다가 젊은 친구들하고 얘기하는 게 재미있어서 계속 강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대학에서 강의하려면 적어도 석사학위는 있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때 아는 변호사가 로스쿨을 추천했지요. 석사도 받고 변호사도 할 수 있는 ‘일타쌍피’라면서. 그 전까지는 로스쿨 제도도 몰랐습니다. 바로 신촌 로스쿨 입학 준비 학원에 등록했지요. 시간이 없어서 학원에 나갈 수는 없었지만 정보는 많이 얻었어요. 저는 로스쿨 가면 다 변호사가 되는 줄 알았지요. 공부하면서 그렇게 고생할 줄도 모르고요.”

‘캠퍼스가 예뻐서’ 선택한 전남대 로스쿨에 입학한 게 2015년이었다. 공부는 ‘곡소리 나게’ 열심히 했다. 이 변호사는 최연장자로서 ‘삼오곡’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전남대 로스쿨 내 35세 이상 모임으로 ‘35세 이상 참 곡소리 난다’는 의미와 ‘35세 이상 꼭 합격하자’는 뜻을 가진 모임이다. 공부하는 걸 빼면 로스쿨 생활은 즐거웠다. 젊은 감각을 유지해야 하는 PD 시절부터 20∼30대 젊은이들과 격의 없이 어울릴 줄 알았다. 가장 젊은 동기는 23세였다. 이 변호사는 23세 어린 동기와 가장 친했다. 학교에서는 젊은 동기를 이 변호사의 ‘양아들’이라고 불렀다. 삼오곡 회원들과는 두 달에 한 번씩 만나 ‘치맥’도 했다.

“그렇게 힘들 줄도 모르고 처음 학교 갈 때는 캠퍼스 생활을 다시 한다는 기대감이 있었어요. 젊은 친구들과 소통도 자신 있었고요. 우리 로스쿨은 120명 정원이 12명씩 10조로 나뉘어 생활합니다. 조끼리 수업도 같이 듣고 밥도 같이 먹고 공부도 함께하지요. 그게 3년 내 유지돼요. 제가 제일 연장자여서 그렇지 두 번째로 나이 많은 친구도 사법시험에 10번 떨어진 40대였습니다. 그 밑에는 8번 떨어진 친구였고요. 이 친구들 덕분에 공부하면서 겪을 수 있는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PD로 일하던 시절 이 변호사가 촬영장에서 찍은 사진을 봤다. 청바지를 입고 수염을 기른 자유분방한 모습이었다.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넥타이를 매고 안경까지 쓴 지금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지금은 살이 좀 쪘다’지만 분위기 자체가 전혀 다르다. 드물게 PD와 변호사를 모두 경험한 이 변호사에게 두 직업군의 차이에 대해 물었다. 이 변호사는 “복장이나 근무환경이 다른 게 제일 크다”면서 “PD가 주도적으로 일하는 직업이라면 변호사는 수동적인 비즈니스로 느껴져 좀 답답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PD가 아이디어에 따라 기획이나 연출을 하는 사람이라면 변호사는 누군가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기 전에는 나설 수가 없다는 뜻이다.

“형식이 실질을 지배한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정장(형식)을 입으니깐 생각(실질)도 좀 포멀해지는 것 같아요. PD로 살 때는 책임 없이 얘기할 때도 잦았어요. 그냥 의견이니깐 책임질 필요가 없었거든요. 근데 변호사는 의견을 내는 데 무게감이 좀 다른 거 같습니다. 근무환경도 다릅니다. PD는 방이 없어요. 출근하면 서로 인사하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모여서 회의하고. 또 회의 3시간 하면 2시간은 노는 시간입니다. 과자 먹으면서 서로 요즘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얘기하지요. 논의를 바로 시작하는 경우는 없어요. 거기에 비하면 여긴 좀 딱딱합니다. 각자 방이 있고 회의를 할 때도 메일이나 전화로 미리 시간을 정해야 하지요.”

PD나 변호사는 젊은이들에게 인기 직종이다. 둘 다 지망생이 많다. 그는 남들은 하나 하기도 어려운 직업을 모두 경험하고 있다. 젊은 지망생들에 대해 조언해 달라고 했다. 그는 한참 고민하다가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시절’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경제성장률이 10% 이상이었던 시기에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한 자신과 요즘 젊은이들의 처지가 같을 수는 없다는 의미다. 예전 같으면 ‘꼰대 같은 소리’를 할 수도 있었지만 로스쿨을 경험하며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우리 때는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일 년에 경제성장률이 10%에 달했는데 일자리가 없었겠습니까. 데모도 많이 하고 학점도 좋지 않았지만 직장을 골라서 들어가던 시절이었어요. 대학생 수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고요. 그런데 사회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지금은 2∼3% 성장이 고작이지요. 그나마 성장의 과실을 누리지 못하는 층이 대부분이고요. 로스쿨에 가서 젊은 사람들의 고충을 많이 느꼈습니다. 취업이 어려워서 로스쿨에 온 친구들도 많았어요. 다 똑똑한 친구들인데도요. 저는 제 친구들한테 젊은이들에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얘기를 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한마디만 해달라고 거듭 요청하자 이 변호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너무 가두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궁즉통(窮則通·매우 궁한 처지에 이르면 도리어 펴나갈 방법이 생김)이라는 말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다. 막혔을 때 오히려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걸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을 가두지 않고 직종을 넘나드는 그의 삶 자체가 그대로 조언이 될 듯싶었다. 버려야 새로 채울 수 있다는 말도 떠올랐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 기자실 책상 위에 쌓아둔 오래된 자료들을 전부 쓰레기통에 버렸다. 좁게만 느껴졌던 책상은 생각보다 아주 넓었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