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통일 여정서 피어난 ‘南男北女의 러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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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관 출신 작가 송승엽, 소설 ‘답방’ 펴내

2代 걸친 애틋한 사랑 그려
첩보영화 같은 박진감 넘쳐
“다음 세대에 희망 전하고파”

새로 나온 소설 ‘답방’(해드림출판사)은 최근 급변하고 있는 남북 관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48년 남과 북이 갈라진 해에 태어난 작가 송승엽(사진)은 이런 소망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우리 손주들만큼은 통일되고 부강한 나라에서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소설은 외면적으로 2대(代)에 걸친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하나는, 중국 베이징 제55중학 국제학생부에서 만난 남과 북의 10대 남녀가 이후 40여 년에 걸쳐 숫눈처럼 순정하고 애틋한 사랑을 나눈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중국 유학을 통해 남쪽 실상을 접한 북 고위층의 딸이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 와서 남쪽 대학생을 사귀며 결과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에 기여한다는 내용이다.

말 그대로 ‘소설 같은’ 스토리이지만, 워낙 핍진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책을 한 번 손에 들면 단숨에 읽게 된다. 스토리 전개에 작위적인 대목이 없지 않으나, 잘 만든 첩보 영화처럼 생생하고 박진감 있는 묘사와 반전이 있는 구성 덕분에 흥미를 유지할 수 있다.

러브 스토리의 이면에는 북핵 위기에서 협상 국면으로 변화한 한반도 주변의 정세가 긴박하게 흘러간다. 남과 북의 정보기관에서 과거 벌어졌던 일들뿐만 아니라 현재 상황,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법한 일들이 자세히 소개된다. 그 내용이 설득력을 지닌 것은,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정무 공사로 퇴직한 저자의 이력이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한반도 정세를 30여 년 관찰해 온 그가 작가로서의 예지력을 총동원해 소설을 완성했기 때문에 소구력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전문가답게 소설 속 주인공인 송지윤을 통해 중국의 과거와 현실을 진단하는 대목이 유독 빛난다. 마오쩌둥의 ‘전 인민이 평등하게 잘사는 공산주의 꿈’이 장기 독재에 의해 ‘전 인민이 다 같이 못사는 궁핍의 평등’으로 갔다는 것,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 오늘날의 중국을 가난에서 부유한 국가로 만든 바탕이 됐다는 것 등을 분명한 근거로 전한다. 대만의 장징궈 총통이 “장 씨 가문의 통치는 2대까지뿐”이라고 선언하고 대만 본토 출신 정치인을 후계자로 임명하며 대만 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한 것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전하려는 것은, 3대 세습으로 권력을 쥔 북 지도자가 향후 북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에 대한 메시지이다.

작가는 소설 속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남쪽 지도층이 통일을 지향하되 북쪽 권력층이 기득권 상실과 정치 보복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을 주문한다. 북쪽 내부의 권력 투쟁이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다시 위기로 만들 수 있는지, 또 남북의 접근을 경계하는 일본이 어떻게 군사 대응을 할 것인지에 대해 보여준다. 우리가 주변 강대국 간의 역학관계를 잘 활용해서 주도적으로 통일을 이룬 후 영세중립국을 지향하는 방안도 제시한다.

이런 내용들은 남과 북의 현 정권 지도자들이 지닌 능력과 선의를 지나치게 믿는다는 허점이 있다. 역설적으로 보면, 그들에게 그걸 바라고 있는 시대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70년을 살아온 작가의 우국(憂國)을 소설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당대 한국 사회의 모든 가치 기준이 오직 돈 하나로 귀결되며, 사람이 얼마나 올바르고 보람된 일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탄식하는 것이 그 한 보기다. 그런 탄식은 그만큼 우리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깊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 송지윤이 북쪽 동년배 유력자인 이철성에게 하는 말은, 작가가 당대인에게 주는 절실한 당부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세대는 이념이란 족쇄를 찬 채 불행하게 살았을망정, 다음 세대까지 족쇄를 채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후세들이 평화롭고 부유하게 잘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저세상에서 친구로 다시 만납시다.”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