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중에도 붓 놓지 않았던 ‘한국화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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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갑 前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85세… 대학 재학중 國展 특선
60여 년간 한국화의 새 길 개척

한국화 거장으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지낸 유산(酉山) 민경갑(閔庚甲) 화백이 숙환으로 타계했다. 85세.

민 화백의 유족은 31일 “고인이 서울 연세대 의대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30일 오후 6시 호흡곤란 상태로 잠깐 고생하신 후 매우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셨다”고 전했다. 투병 중에도 붓을 놓지 않고 그림에 정진했던 고인은 화업 60여 년간 한국화의 새로운 길을 끊임없이 개척하며 예술혼을 불살랐다.

민 화백은 1933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해 대전고를 졸업하고 1953년 피란지인 부산에서 서울대 미대에 입학, 재학 중에 국전(國展)에서 특선 영예를 차지함으로써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1960년대 화단 입문 초기부터 추상성을 가미한 한국화의 실험적 조형성을 선보이며 비구상 작품을 과감히 내놨던 그는 1970년대에 사실적인 풍경화를 포함해 구상화로 돌아온 후 끊임없이 작품 세계의 변모를 꾀했다. 최근에는 한국화의 전통 화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수묵과 채색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화가가 화공(畵工)과 다른 것은 창작혼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평소 말해왔다. 단국대, 영남대, 동덕여대, 원광대 등 교수로서 후학을 가르칠 때도 쉼 없이 자기 혁신을 이뤄가는 예술 정신을 강조했다. 지난해 열린 개인전에서 고인은 “화단에 ‘전업작가’란 없다. 일단 붓을 잡았으면 생명이 다할 때까지 그림을 그려야 한다. 요즘도 나는 매일같이 하루에 10시간 정도 작업을 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2016년 세밑에 이뤄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민 화백은 긍정 정신을 강조하기도 했다. “세상에 여러 가지 금 중에서 ‘지금’이 가장 소중하다.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안 온다. 그러니 시간을 아껴서 즐겁게 쓰고, 늘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후배들에겐 말하곤 한다. 낙망하지 마라, 사방이 막혀도 한군데 하늘은 뚫려 있지 않느냐.”

화단을 대표하는 인물로 2000년 예술원 회원이 된 고인은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2002년), 대한민국 예술원상(2004년),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2007년), 대한민국미술인상 본상(2010년) 등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백옥문(82) 여사와 아들 민지홍, 딸 예홍 씨가 있으며, 사위는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특2호실, 발인은 2일 오전 7시 30분. 02-2227-7500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