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노인’ 늘 수밖에 없는데… 근골격 만성질환 대책은 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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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건강대책, 문제 없나

노인 89.5% 만성질환 앓는데
건강대책은 치매·심혈관 치중

이대로 일터 내몰면 생산성↓
진료비 급증 등 역효과 우려도
고혈압·당뇨처럼 지속관리를

인구절벽을 맞은 대한민국의 생존전략으로 ‘액티브 시니어’의 역할이 커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노인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액티브 시니어는 활력 있고 건강한 노인을 의미한다. 생산가능인구 기준을 넘어선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서도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노인을 뜻하기도 한다. 이들도 저출산 고령화 현상과 맞물려 새로운 해법으로 자신에게 요구되는 액티브 시니어의 역할을 모르지 않는다. 문제는 국내 다수의 노인이 액티브하지 않다는 점이다. 액티브하지 않은 노인에게 활동을 요구할 경우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정부가 노인 건강 대책을 서둘러 준비한다고는 해도 당장 노인의 질환 치료 지원에 급급하다. 또 예방법은 주로 치매나 심뇌혈관 질환에 치중돼 액티브와 관련이 많은 만성질환 관리대책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호연(강동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대한골대사학회 이사장은 12일 “현재 우리나라 노인 건강대책은 노인 인구가 액티브 시니어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며 시급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고령화 대책 ‘1호’, ‘일하는 노인 늘려라’ = 2018년 우리나라 출생률은 역대 최저치(합계출산율 0.98명)를 기록했고 사망자 수(29만8000명) 또한 전년 대비 증가하면서 전체적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다.

우리나라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65년이면 2015년의 55.1% 수준인 2062만 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부양해야 하는 노인 인구의 수(노년 부양비)는 2018년 19.6명에서 2025년 29.4명으로 급증한다는 전망도 나왔다. 생산인구 감소와 노인부양 부담 증가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노인’ 인구를 늘리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이미 고령화를 먼저 경험하고 있는 일본 및 유럽국가들이 추진하는 정책이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인구 고령화에 따라 성장 잠재력 감소를 우려해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경제활동에 종사할 수 있도록 고령자 나이 기준을 높이고 있다.

지난 2월 일본 정부는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분류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발표하며,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일할 수 있는 ‘에이지리스(Ageless) 사회’를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럽 국가들은 이미 2001년 모든 회원국이 55세부터 64세까지의 노인 고용률이 최소한 50%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이 추세에 동참하고 있다. 올해 초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노인 나이를 만 70세로 상향하는 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인 나이 만 70세 상향 시, 2040년 기준 생산가능인구는 424만 명(8.4%포인트) 증가하고 노인부양비는 59.2명에서 38.9명으로 감소하게 된다.


◇일하는 노인, 건강은 필수 = 문제는 한국의 노인들이 일할 만큼 몸이 성치 않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 노인 89.5%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특히 노인의 73.0%는 2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복합 만성질환자’로 분류되고 있다.

특히 노인 인구의 절반(51.0%)은 3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다. 몸이 불편한 노인은 일 자체가 어려워 자칫 일터로 내몰았다가는 생산성 저하는 물론, 되레 진료비가 급증해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할 수 있다. 한국조세연구원은 노인성 만성질환이 하나씩 증가할 때마다 건강보험공단 연평균 부담 비용이 약 105만 원씩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보건복지부는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진료비 중 노인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40.9%라고 밝히기도 했다.

노인 진료비 증가율은 노인 인구 수 증가율보다 2배 이상 빠르다.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가 노년기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2020년부터는 노인 진료비가 급속도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은 시나리오 분석 결과, 2060년 노인진료비는 2015년의 19조 원 대비 약 20배인 최대 390조 원까지 증가한다고 추정했다. 노인진료비 증가 속도를 낮추기 위해 정책적 개입을 통해 만성질환 발생을 예방하고 건강증진에 초점을 맞춘 정부의 보장성 관리가 시급한 이유다.

◇치매·심혈관 질환에 치중한 대책은 문제 = 복지부의 2018년 노인보건복지사업의 건강 관련 정책 9가지 중 5개는 치매 연계 사업이다. 나머지 4개 사업은 실종노인 찾기, 실명예방사업, 무릎 인공관절 수술 지원, 건강진단 등이다. 액티브 시니어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정책들이다. 그나마 정부가 만성질환관리법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조차도 고혈압과 당뇨병이 전부다.

노인의 활동 및 생산성과 연관된 뼈와 관절 관련 만성질환 관리는 부족하다. 통계청 고령자 통계를 보면 현재 노인 일자리는 단순노무(24.4%), 기능 및 기계조작(22.3%), 서비스 판매(22.1%) 등 대부분 신체활동이 수반되는 직종이다.

특히 골다공증과 같은 근골격계 만성질환은 진단 시 지속해서 치료하지 않으면 골절로 인해 노인 인구의 생산능력이 크게 줄어들고 기본적인 일상생활 수행능력조차도 어려워진다. 실제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입원 다발생 질병 순위를 분석한 결과, 뼈와 관절 관련 진료 인원 비율이 28.8%로 노년 백내장(25.3%), 치매(12.6%) 등을 제치고 1위다. 진료비 비율도 치매(34.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23.3%를 기록, 중풍 및 뇌졸중(19.8%)보다도 높다.

특히 골다공증 골절의 경우 간병비 및 노동생산성 손실 등을 고려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약 1조 원을 넘어선다는 분석도 나온 바 있다.

정호연 이사장은 “노인 인구가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데 직접 연관되는 만성질환을 집중 관리하는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특히 골다공증과 같은 근골격계성 질환도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지속적 관리가 가능한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