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北 핵·경제 병행은 자멸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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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록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 정치학

북한 배급 붕괴와 장마당 형성
과정으로서의 통일 이미 시작
생활 향상 없이 체제 존속 못해

경제력 비해 군사력 과도하면
필연적으로 쇠퇴한다는 교훈
북한 이미 발전 불가능 상태

독일, 베트남, 예멘, 대한민국! 이 네 나라의 공통점은 모두 20세기 중반에 분단됐다는 것이다. 한국을 제외한 세 나라는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통일됐다. 독일은 서독의 동독 흡수 통일, 베트남은 북베트남(월맹)의 남베트남(월남) 무력 통일, 예멘은 남·북 협상에 따른 평화 통일을 이뤘다. 3국의 통일 과정을 비교·분석해 보면, 한국의 통일에 대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한국의 통일도 독일의 경우처럼 대한민국의 북한 흡수 통일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서독의 경우, 통일에 유리했던 당시 외적 요인과는 별개로 효율적인(effective) 정치, 강한(strong) 경제, 자유시장경제의 폐해를 최소한 사회보장 제도와 노·사 동수의 이사회 구성을 통한 안정된(stable) 사회를 통해 이미 내적 요인이 잘 갖춰져 있었다. 결국, 동·서독 간의 정치·경제·사회 체제의 우열 관계는 동독 주민의 정체성을 서독 사회 지향적으로 전환했는데, 이는 향후 남·북한의 통일 과정에도 해당할 것이다. 통일을 행사(event)가 아닌 과정(process)으로 볼 때 미래의 통일된 시점에서 오늘을 조망한다면, 배급 경제의 붕괴와 장마당의 활성화, 그리고 김정은 정권 등장 이후 남·북 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은 회담의 성공과 관계없이 한반도가 통일 과정에 들어섰음을 말해주게 될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그의 아버지인 김정일과 달리, 더는 이른바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의 신화에 기대어 정치적 권위와 정당성을 확보할 수가 없다. 경제적 성과를 통해 북한 주민의 생활을 향상시키지 않고는 체제의 정당성 확보와 정권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권이 존재했을 당시, ‘하나(당 또는 수령)는 전체(인민)를 위해, 전체는 하나를 위해’라는 사회주의적 이상형 인간을 완성했다는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였는지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전쟁과 혁명, 이념의 과잉 시대였던 20세기를 돌이켜보면, 그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역사를 퇴행시켰는지 알 수 있다.

모든 국가는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본질로 하는 국익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그들의 생존과 번영을 담보해줄 것이라 믿고 개발한 핵무기가 역설적으로 북한의 붕괴와 자멸을 재촉한다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북한이 아무리 자립형 폐쇄 국가라 할지라도 지금과 같은 국제 제재를 장기간 견뎌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핵무기를 만지작거릴 수도 없다. 핵무기는 위협 수단은 될지언정 사용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미국이 공식적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10년 동안 치명적인 대량파괴무기(WMD)인 생화학 무기를 사용했지만, 치욕적인 군사적 패배에 직면해서도 결국 핵무기는 사용하지 못했다.

폴 케네디는 ‘강대국의 흥망’이라는 명저(名著)에서, 경제력에 상응한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는 강대국으로 성장하지만, 경제력에 비해 과도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는 쇠퇴한다는 사실을 500년간의 유럽 역사 연구를 통해 실증적으로 규명했다. 고대 로마 이래로 병력은 인구의 1%가 최적정 수준이라고 하는데, 2018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의 병력은 인구의 5.1%나 된다. 한국 1.2, 미국 0.4, 중국 0.1, 러시아 0.7, 프랑스 0.3, 그리고 영국과 독일은 각각 0.2%에 불과하다. 북한처럼 평시에 이렇게 과도한 군사력을 보유하고도 경제 발전을 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울러 독일의 경제학자 게오르그 함은 이미 1929년 ‘사회주의 경제 성공은 장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하다’고 예언했는데, 북한은 물론 기존의 사회주의 경제가 이를 사실로 입증했다. 이처럼 사회주의 경제의 본질적 문제와 더불어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과도한 군사력 보유는 결국 북한 경제를 회생 불가능하게 만든다.

인류 역사에서 때로는 반동의 시기가 있었다. 물고기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물결의 세기를 알 수 있다고 하지만, 지도자(또는 국가)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면 몰락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앞으로, 국가 통치의 이념으로 자유·민주·인권·복지·평화는 거역할 수 없는 대세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선택은 자명하다. 그것이 북한이 사는 길이고, 우리 민족의 공동 번영과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다. 끝으로, 우리는 머지않아 현실로 다가올 통일을 위해 우리의 내적 역량을 더욱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