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민노총 잇단 일탈과 물러터진 공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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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학

지난해부터 노조가 국가 정책이나 공권력 행사에 불만을 표출하며 국가기관에 난입해 불법 점거나 농성을 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민주노총 소속 노조 간부들이 대검찰청사에 난입해 검찰총장과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인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민노총 소속 노조원들이 관공서와 국회의원실 등을 점거하면서 노동운동이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14일에는 명확한 매각 반대 의사 표명 등을 요구하며 거제시장실에서 난동을 부린 대우조선 노조원들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또, 대구에서는 교육공무직 대구지부 돌봄전담사 60여 명이 14일 오후부터 시교육청 본관 2층에서 점거 농성을 하는 등 불법이 횡행하고 있다.

과거 노동계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국민의 공감을 끌어내는 방법으로 주로 집회·시위를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실정법을 부정하거나 공권력의 정당한 행사를 방해하면서 빈번하게 공권력과 충돌했다. 그런데 최근의 무차별적 국가기관의 점거는, 실정법을 무시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관철하려는 위법행위에 불과하므로 국가 법질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노동계가 이런 행태를 반복하면서 실정법을 도외시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정부가 엄격하게 법을 집행한다면 노동계의 일탈·위법 행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의 근로권을 보장하면서 근로조건의 기준을 인간의 존엄성 보장에 맞추도록 법률로 정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헌법은 근로자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노동 3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은 노동권 보장의 범위를 근로조건의 기준과 그 향상에만 한정하고 있다.

근로권과 노동 3권은 사회권이고, 자유권처럼 그 자체로 보장되는 건 아니다. 사회권은 국가의 입법 조치가 있어야 하고 그 보장에는 일정한 조건이 부과된다. 국가의 법질서에서 어떤 권리도 무제한 보장되지 않으며, 권리의 보장에는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 근로권과 노동 3권의 보장은 법률에 의해 구체화된다. 노조의 주장을 합법적으로 관철하려면 노동관계법의 규정을 따라야 한다. 노동관계법 그 어디에도 권리 보장을 위해 국가기관을 점거하거나 농성하라는 규정은 없다.

노조의 국가기관 점거나 농성은 국가의 법질서를 무시하는 행위다. 헌법은 다수의 표현을 보장하기 위해 집회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실정법이 권리를 침해한다면 법에 따라 권리를 구제받아야 한다. 누구도 국가의 법질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법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권리도 보호받을 수 없다. 법치국가는 권리의 실질적인 보장을 추구하지만, 법 우선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법을 위반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다소간의 위법이 용인될 수 있다면 이는 법치국가가 아니다. 법치국가는 국가의 실정법이 지배하는 국가다.

법은 우리의 약속으로, 이를 준수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법을 준수하지 않는 것은 법치국가를 부정하는 것이고, 이는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최근 일부 노조의 행위는 법의 범위를 한참 벗어났으며, 더는 용인돼선 안 된다. 아무리 목적이 순수하고 정당하다 해도 위법행위는 법치주의를 파괴한다. 국가도 노조의 위법행위에 대해선 공정하고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고, 특별사면도 제한해야 한다. 무원칙한 법의 관용은 불법을 조장해 법치를 훼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