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영장 기각>“무죄이유 설명하더니, 말미엔 ‘객관적 물증 확보’”

‘김은경 기각’ 논란 커져

“앞뒤가 안맞는 논리적 모순
김기춘 등 ‘관행’때문에 구속”

“불구속 수사가 원칙” 의견도

‘산하기관 임원 강제 사퇴 및 낙하산 인사 채용’ 혐의를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26일 기각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법조계는 엇갈린 반응을 보이면서 시끄러운 모습이다. 비판론자들은 “영장판사가 현 정부 인사에게 무죄 판결문을 선물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 “불구속 원칙은 환영할 일”이라는 긍정 평가도 나왔다. 한 단독판사는 “기각 사유 말미에 ‘객관적인 물증이 확보됐다’면서 앞에선 무죄인 이유를 줄줄이 설명한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비판론자들은 특히 증거와 법리만으로 판단해야 하는 법원이 관행을 이유로 ‘살아있는 권력’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 이례적으로 유·무죄에 대한 본안 판단까지 다뤘다고 지적했다. 법조인들이 이번 영장 기각 사유를 놓고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설명한 데에는 △관행이 면죄부 사유가 되지 않음(전 정부 사례와의 형평성) △영장 판사가 본안 판단 영역 침범 △퇴직자는 구속하지 않는다는 실무기준이 없음 등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이날 오전 1시 50분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든 사유에 대한 비판이다.

한 법원장은 “관행도 불법이면 단죄하는 것이 ‘법치주의 최후 보루’인 법원의 임무”라면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혐의를 받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특수활동비 상납 혐의를 받은 국가정보원장 등 전 정부 관계자들 역시 법원에서 ‘관행이었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구속됐다”고 지적했다.

이 법원장은 “영장판사는 ‘관행이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직권남용에 대한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이는 사정이 있다’고 설명했지만, 전 정부 인사들이 그 같은 관행 때문에 구속되는 걸 보고도 버젓이 똑같은 일을 저질렀는데 ‘고의성이 없어 보인다’는 말은 편들어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원래 영장은 범죄혐의가 소명되는지, 즉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정도를 판단하게 돼 있다”면서 “예를 들어 검찰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할 때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면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가 성립하는지 의문’이라고 범죄 구성요건 해당성 자체가 없다는 판단을 밝혔다”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그런데 이번 영장 판단에서 판사는 범죄혐의가 소명되는지 여부를 한참 넘어서서 고의성이 결여됐다는 등 아예 본안 판단을 해줬다”면서 “김 전 장관은 무죄라고 설명해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퇴직자이기 때문에 증거인멸 등의 사유가 없다는 논리 역시 일천하다”면서 “퇴직자는 구속하면 안 된다는 새로운 기준을 선언한 건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은 앞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에 대해서는 퇴직했음에도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법원이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해 보인 판단과 비교했을 때 이중잣대를 보인 건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설명했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