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의 SOS 다 외면당해… “아동학대땐 우선 격리조치부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친모와 계부 의붓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체포된 김모(31) 씨가 지난 1일 전남 무안의 현장검증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피하고 있다. 왼쪽은 자신의 친딸을 살해한 김 씨의 범행을 공모·방조한 혐의로 체포돼 지난 2일 구속영장 심사에 출석한 유모(39) 씨. 연합뉴스

- 계부에 의한 12세 여아 피살사건… 우리 사회 구조적 문제

경찰·보호시설 등 신고해도
어떤 구원장치도 작동안해

학대 아동 체계적 보호필요
친권도 과감하게 제한해야
전문가들 안전망 구축 촉구

걸음마도 떼기 전에 부모의 이혼으로 친부와 계부의 집을 오갔던 ‘목포 의붓딸 살해 사건’ 피해자 A(12) 양의 비극적인 짧은 삶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의지할 곳 없는 A 양은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고, 경찰은 직접적 도움의 기회가 최소 3번이나 있었지만 A 양의 생명을 놓치고 말았다. 또 가족은 물론이고 경찰과 사회, 국가가 모두 이를 외면한 셈이어서 이번 사건에 대해 구조적인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부모를 비롯한 가족에게 1차적 책임이 있지만, 가정의 기능이 작동하지 못한다면 사회가 구성원을 책임질 수 있는 복지장치가 제대로 가동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일 경찰 등 관계기관에 따르면 A 양의 비극은 가족과 주변의 절대적 보호가 필요한 2세 유아 시절인 지난 2009년 부모의 이혼에서부터 시작됐다. 친부와 계부의 집을 오가며 반복·지속적으로 학대에 시달렸던 A 양은 지난 4월부터 경찰에 직접 사건을 신고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계부 김모(31) 씨는 지난 1월 친부와 목포에 살던 A 양을 광주로 불러 차량에서 성폭행을 시도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A 양은 친부와 함께 지난 4월 9일 김 씨가 자신에게 음란물을 전송하는 등의 성추행을 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같은 달 12일에는 김 씨가 강간을 시도했다고 추가 진술한 뒤 14일 전남해바라기센터에서 피해자 조사도 받았다. 또 A 양은 지난 15일 경찰에 신변보호 신청을 했다가 5시간여 만에 철회하는 이상행동을 보였다. 사건을 신고받은 목포경찰서는 같은 달 16일 광주지방경찰청으로 사건을 이첩했지만 광주경찰청은 23일에야 사건 기록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결국 A 양의 신고 사실을 알아챈 김 씨는 여행을 하자며 A 양과 친모 유 씨, 생후 13개월 아들을 데리고 전국을 떠돌다가 지난달 27일 A 양을 살해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이 피해자 보호조치를 제대로 했는지, 수사 과정에서 소홀함은 없었는지 등에 대해 직권조사에 착수했다고 2일 밝혔지만 이미 죽은 A 양의 목숨을 되살릴 수는 없다.

A 양 사건 과정에는 자녀·아동에 대한 부모들의 왜곡된 인식, 경찰 및 국가의 미흡한 보호시스템 문제가 깃들어 있다.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는 “가정 내 학대는 친부·친모, 계부·계모를 가리지 않고 자녀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 인간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없다는 게 근본적 이유”라며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부부 관계에 나쁜 사정이 있을 때 아이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해 화풀이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따라 아동학대의 경우 친권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영심 숭실사이버대 아동학과 교수는 “아이가 여러 번 신고했는데,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이 끊겼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이런 아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안전하게 자랄 수 있게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A 양의 구원 요청과 엇갈린 경찰 등 관계기관의 대응은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모든 아동학대는 개인적인 일에서 출발하지만 참담한 상황까지 이르는 데는 구조적 문제가 작용한다”며 “학대 피해 아동들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해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이런 조치를 안 했다는 것이고, 임시조치·긴급조치·분리조치가 다 마련돼 있는데 일선에서 어떤 기준으로 조치를 하고 있는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송유근·조재연 기자 6silver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