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덤한 ‘인물’에 공감하거나… 평면화된 ‘풍경’에 빠지거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관람객들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클라크 부부와 퍼시(Mr. and Mrs. Clark and Percy)’를 보고 있다. 퍼시는 남자 무릎 위에 고양이 이름. 1970년 아크릴물감으로 그려진 작품이며 크기는 213.4×304.8㎝. 오른쪽 작품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호텔 우물의 경관 Ⅲ’, 1984~1985, 석판화 에디션 80, 123.2×97.8㎝. ⓒDavid Hockney / Tyler Graphics Ltd., Photo Credit: Richard Schmi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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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니展 벌써 12만명 관람 애호가 4人이 본 ‘열풍 이유’

미술관장 이재언
자극적이지 않고 소통에 충실

화가 황주리
‘그림은 이래야 한다’는 관념깨

뇌과학자 정재승
인물 표정에 깊이 몰입하게돼

평론가 정준모
공간감 없애 착시현상 풍자

한국인들은 왜 데이비드 호크니(82)에게 열광할까.

지난 3월 22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한 데이비드 호크니 전은 한 달 만에 10만 명을 돌파하며 미술계 최대 화제로 떠올랐다. 5월 8일 현재 관람객은 12만5000여 명으로 말 그대로 ‘대박’이다. 주말이면 전시가 열리는 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주변엔 긴 줄이 서, 입장에만 1, 2시간을 기다려야 할 정도다. ‘호크니 열광’의 가장 큰, 표면적인 이유라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화가’라는 거장의 ‘이름값’이다. 호크니의 1972년 작품 ‘예술가의 초상’은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9030만 달러(약 1019억 원)에 팔려 세계 최고가를 기록했다. 여기에 호크니는 난해한 추상과 개념미술이 대세인 시대, 전통적인 회화로 대중과 소통하는, 몇 안 되는 작가다. 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호크니 전에 몰리는 이유가 그 때문만일까. 화가, 미술관장, 비평가, 뇌과학자 등으로부터 요즘 미술계의 최대 화제인 ‘데이비드 호크니 전 열기’에 대해 들어봤다.

이재언 인천아트플랫폼 관장은 “호크니의 작품은 판화든, 드로잉이든, 페인팅이든 모두 ‘그림다움’에 충실해 관람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를 그림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실험을 즐기기는 했지만 ‘새로움’이라는 충격이나 거창하고 자극적인 현대미술의 제스처를 즐기지는 않았다”며 “그의 작품이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이 같은 ‘소통’과 ‘그림다움’에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화가 황주리 작가는 호크니 열광을 ‘고정관념을 깬 현대적인 세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89년쯤 런던의 한 미술관에서 ‘예술가의 초상’을 감상하는 순간 ‘연극적이고 사색적인’ 장면에 ‘그림이란 이래야 한다’는 그간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다”는 황 작가는 “호크니 그림에 열광하는 이유는 호크니가 기존 화법에서 벗어나 ‘현대적 풍경화’ ‘현대적 인물화’를 그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함께 호크니 그림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하지만 결핍되기 쉬운 ‘자유의 지평’도 만나게 한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는 뇌과학자답게 ‘옥시토신 호르몬’을 언급했다. 정 교수는 “호크니의 ‘2인 초상’ 시리즈를 보면 부부 관계인데도 대부분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다”며 “이 단계야말로 상대가 곁에 없으면 불안하고 걱정되며,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안정되고 각자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편안한 상태”라며 “바로 이 같은 애착 단계에서 옥시토신 호르몬이 분비되고 그래서 관람객들로 하여금 작품에 동조해 깊게 몰입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호크니는 30대 중반에 이미 미술계를 넘어서는 스타가 됐지만, 한 스타일을 고수하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했다. 초상과 정물, 풍경을 넘나들고, 관습적인 일점소실 원근법을 거부했으며, 회화부터 아이패드까지 다양한 매체를 섭렵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씨는 이번 한국 전시 역시 “호크니 특유의 화법이 살아있다”면서도 그의 대표작인 ‘포토콜라주 작품’이 빠진 것은 애석한 일이라고 했다. 피카소의 입체주의 영향을 받은 포토콜라주는 여러 시점에서 찍은 풍경 사진을 조각조각으로 오려 내 이를 다시 이어붙여 다시점 구도로 만든 작품이다. ‘퓌르스탕베르 광장’(1985), ‘My Mother’(1982) 등이 대표작이다. 국내 화단의 많은 평자들도 전시되는 133점 중 100점 이상이 판화 작업의 결과물이고 정작 중요한 대작은 오지 않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정 평론가가 지적했듯이 호크니 미학의 큰 축인 1980년대 ‘포토콜라주’가 통째로 빠져 있고, 최근 몰두 중인 ‘아이패드’ 그림 연작도 볼 수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서울시립미술관 관계자는 “판화 소장품이 많은 영국 테이트 미술관을 비롯해 총 8개의 해외 기관으로부터 대여한 작품들이어서 판화가 많지만 판화는 호크니가 사용한 중요한 매체다. ‘판화’라는 기존의 선입견으로 볼 것이 아니고 ‘페인팅 작업에 판화 기법을 응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대표작인 ‘더 큰 첨벙’ ‘클라크 부부와 퍼시’ ‘움직이는 초점’ 시리즈, ‘더 큰 그랜드캐니언’과 최근작인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 등의 대작도 만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8월 4일까지 계속될 호크니 전을 볼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일까. 정 평론가는 “호크니 그림을 감상할 때는 풍경 그 자체보다는 공간 속 인물과 사물의 배치 등을 주의 깊게 보라”고 조언한다. 그는 ‘2인 초상화’ 시리즈 중 하나인 ‘클라크 부부와 퍼시’ 같은 작품만 봐도 원근감을 살려 거실의 두 사람을 그렸지만, 뒤편 베란다와 그 너머 풍경은 소실점을 없애 입체 구도를 평면화해 공간감을 없애 버렸다”며 “호크니의 작품은 보는 것이 보이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풍자한다”고 설명했다.

글·사진 =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