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인력 해외유출 ‘초비상’… 재계 “강력 처벌을”

- 반도체업계 등 국회에‘산기법 개정’의견서

“기술전문 인력 전직 제한
비밀유지 체결도 의무화
기술 목적외 사용 금지도
유출초범이라도 엄벌해야”

산업계가 국회에 국가 핵심기술을 다루는 전문인력의 전직 제한과 비밀유지 계약체결 의무 부과 등을 포함한 ‘산업기술유출방지법’(산기법) 개정을 강력히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자동차, 조선, 가전 등 부문에서 국가 핵심 기술과 인력이 중국 등 해외로 지속해서 유출돼 피해가 커지는 등 초비상이 걸렸지만, 산기법 개정 논의가 답보상태인 데 따른 것이다.

17일 산업계에 따르면,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산업계 대표로 의견을 취합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홍일표(자유한국당) 위원장과 같은 당 이종배 의원에게 ‘산기법 개정에 대한 산업계 주요 의견서’를 전달했다.

건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국가 핵심기술의 보유기관, 유출, 침해행위 및 대상자의 재정의 △국가핵심기술의 정보보호 보호조치 강화 △국가핵심기술 유출 및 침해행위의 벌칙 강화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회장은 진교영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 총괄사장으로, 이번 의견을 취합해 건의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산업협회는 산기법 개정의견에 국가 핵심기술을 취급하는 전문인력의 전직을 제한하고 비밀유지 계약체결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았다. 국가핵심기술을 목적 외 사용 및 공개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곽대훈 한국당 의원 발의)을 마련해 법원이 판결한 취지와 다르게 안전 등을 이유로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막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및 침해행위의 벌칙 강화와 함께 사용 목적 외 유출행위자에 대한 벌칙 신설도 요청했다. 유출행위에 대해서는 지난해 윤상직 한국당 의원이 ‘7년 이상 유기징역 및 16억 원 이하 벌금 병과’로 벌칙을 상향하는 관련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산업계는 이 법안의 통과를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국내 핵심 기술의 중국 인력유출이 가속화되는 상황인데 법체계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며 “산기법 개정을 통해서 문서로 인한 유출, 즉 목적 외 사용 금지를 명확히 하고 기술 유출의 경우 초범이라 해도 엄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조속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기업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분야의 경우 중국으로의 인력 유출이 표면화하고 있지만 관련 법 개정 논의는 진척이 없는 상태다.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인 BYD는 3~4배에 달하는 고액 연봉을 제시해 한국 기술자를 스카우트하고 있고, 중국 배터리 업체인 ATL은 박사급 연구인력 중 절반가량을 한국인으로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 반도체 업계와 독일 반도체 제조업체인 인피니온도 한국 인력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첨단기술의 해외유출 방지 전담조직인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가 지난 10년간(2008~2018년) 적발한 국내 첨단기술 해외유출 사건 364건 중 절반 이상이 중국으로 유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은지 기자 eu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