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정부, 제2우산혁명 비화 조짐에 ‘범죄인 인도 법안’ 심의 일단 연기

대규모 시위대 수만 명 입법회 주변 집결·봉쇄
7개 대학 학생회 동맹휴업, 노동단체 파업 선언
캐리 람 행정장관 “살해 협박 받았다”며 자제 호소
　
지난 9일 100만 명이 넘는 홍콩 시민을 거리 시위에 나서게 했던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 법안’이 12일 입법회에서 심의될 예정이었다가 도심에 대규모 시위대가 집결하면서 일단 연기됐다.

홍콩 정부는 성명을 내고 “이날 오전 11시로 예정된 2차 심의 개시가 연기됐으며, 입법회 사무국이 추후 변경된 2차 심의 개시 시간을 의원들에게 통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조치는 자칫 시위가 격화할 경우 2014년에 이어 ‘제2의 우산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홍콩 정국을 마비시키고 나아가 미국에 무역전쟁을 치르는 중국 중앙정부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밍바오(明報),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밤 홍콩 입법회 의장 앤드루 렁은 이날 법안 2차 심의에 이어 61시간의 토론 시간을 갖고 오는 20일 3차 심의와 표결에 들어간다는 일정을 제시했었다.

이날 오전 시내 타마르 지역에 있는 입법회 건물 주변에는 전날 저녁부터 몰린 수천 명의 시위대가 법안 저지 시위를 벌이며 경찰 5000명과 긴장 속에 대치했다. 홍콩 재야단체 연합인 ‘민간인권전선’은 “홍콩의 직장인과 학생들, 기업인들은 일과 학업을 멈추고 법안 저지에 온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며 총파업과 저지 시위 동참을 촉구했다. 홍콩 입법회와 정부청사 건물이 있는 애드미럴티 지역으로 몰려든 시위대의 규모는 갈수록 불어나 오후에는 수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젊은층이 주류를 이루고 상당수가 검은 옷에 하얀 마스크를 쓴 이들은 입법회 인근 주요 도로를 점거하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시위대는 교사, 사회복지사, 예술가, 기업가, 항공사 승무원 등 각계각층을 망라하고 있다. 홍콩중문대, 홍콩과기대, 홍콩이공대 등 7개 대학 학생회는 동맹휴업을 벌이고 법안 저지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천명했다. 72개 고등학교 학생들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위 동참 뜻을 밝혔다.

시위대의 도로 점거로 인해 버스 통행은 전면 중단됐다. 시위대는 입법회와 정부청사로 통하는 연결로를 아예 봉쇄해 사실상 의원들의 입법회 출입이 불가능한 상태다. 시위대는 범죄인 인도 법안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완차이에서 센트럴까지 도심 도로를 점거하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지하철 교통까지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홍콩 경찰은 5000명의 인력을 입법회와 정부청사 주변에 배치해 시위대 통제에 나섰다. 애드미럴티 지하철역에서 경찰이 검문검색을 하자 시민들이 거칠하게 항의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때 시위대가 입법회 건물에서 철수하지 않을 경우 경찰이 발포하겠다고 경고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과 친중파 의원들은 자제를 촉구했다. 특히 캐리 람 행정장관과 테레사 청 법무부 장관(율정사 사장) 및 가족 등은 범죄인 인도 법안이 철회되지 않을 경우 24시간 이내에 살해할 것이라는 신원 미상 인물의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홍콩 경찰은 이 협박범의 신원과 배후 파악에 나섰다.

현재 홍콩 입법회 총 70석(지역구·직능대표 각각 35석) 중 친중파가 43석으로 과반수로 표결이 이뤄지면 통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홍콩 언론들은 분석했다.

베이징=김충남 특파원 utopian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