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계약’에 피멍든 SW업계… 정부대책은 시늉만

“어렵게 경쟁해서 수주해도
발주사 일방 계약해지 빈번”
하청대상 불공정계약 만연

정부 근절법안 마련했지만
표준계약 권고론 해결안돼

소프트웨어(SW) 업계가 우월적 지위에 있는 발주사의 ‘불공정 계약’에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고착화한 ‘발주사 갑(甲)질’을 인지하고 관련법 개정을 통해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할 방침이지만, 표준계약서 작성이 의무가 아닌 권장사항이라 불공정 거래를 근절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5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SW 업체 A사는 근래 박빙의 경쟁 끝에 금융 B사의 IT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A사 프로젝트 매니저가 사내 법무팀과 B사가 작성한 계약서 초안을 검토하다가 이상한 조항을 발견했다. 계약서에는 ‘B사의 사업계획 변동이 있을 경우 A사는 통보를 받는 즉시 프로젝트를 중지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또한 이 경우 본 계약 해지도 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프로젝트가 중간에 중단되면 금전적 피해는 A사가 고스란히 떠맡게 되는 구조다. 이에 A사는 B사에 계약서 변경을 요청했지만, 결국 거부당했다.

IT 업계는 위 사례처럼 발주사와 수행업체 간 불공정 계약이 비일비재하다고 토로한다. IT 업계 관계자는 “SW 업계는 관행처럼 굳어진 발주사의 괴롭힘에 피멍이 들고 있다”며 “발주사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면 이의제기나 비용청구가 어려운 계약구조인 경우가 적지 않아 이를 피하기 위해 부당한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IT 업체 관계자는 “발주사 관계자가 퇴근 후에도 전화를 걸어 업무를 지시해 다시 근무지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며 “우리는 ‘직장 외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SW 업체가 대기업일 경우 사내 법무팀을 통해 부당한 지시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문제는 수행업체가 중소기업일 경우 법무팀이 없어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조달정보개방포털에 따르면, 2017년 공공 SW 사업 수행기업의 분포는 중소기업 96.5%, 중견기업 1.5%, 대기업 1.3% 순이다. 이처럼 SW 사업의 경우 발주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이 대다수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전부 개정안을 마련해 SW 사업 계약 체결 시 표준계약서 작성을 권장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IT 업계는 표준계약서 작성 권장만으론 갑질을 근절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국회 상임위원회도 지난 3월 검토보고서를 통해 “표준계약서 사용 권장을 의무사항으로 수정해 표준계약서 사용 확대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김진욱 한국IT법학연구소 부소장(변호사)은 “4차 산업혁명시대는 SW 역량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며 “공정한 계약을 통한 정당한 대가 체계에서 우수인재양성, 투자 등이 선순환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해완 기자 paras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