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인 우대·국제 기술교류 확대 통해 ‘기능한류’ 일궈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8월 열린 러시아 카잔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자동차정비 직종에 출전한 최종민(현대차) 선수가 경기에 집중하고 있다. 국제기능올림픽 풀기자단

2019 기능올림픽이 남긴 과제

참가국가들 실력 상향 평준화
中 부상·러 개최국 이점 영향
韓 첨단산업중심 재편도 원인

日·獨 등 기존 제조업 강국은
현장 맞춤형 숙련공 양성 집중

韓도 ‘엘리트 육성 훈련’ 넘어
‘보편 기술교육’으로 변화 필요

몽골·오만 등과 기능전수 협약
韓, 개도국에 기술 지원 박차

‘영원한 1등은 없다.’

승부의 세계에서 흔히 통용되는 이 말은 지난 8월 막을 내린 러시아 카잔 국제 기능올림픽대회에 참가한 우리 국가대표 선수단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48년 간 19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며 ‘기능올림픽 강국’으로 군림해 왔으나 이번 대 회에서는 종합순위 3위라는 성적에 만족해야 했다. 이 같은 성적은 개최국의 강한 견제나 중국의 도전을 고려하면 선전한 결과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기능 올림픽 강국의 위상을 이어가기 위한 과제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기능인 경시 풍조’를 극복하고, 기능 한류의 저변 확대 로 위상을 넓혀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홍제용 국제기능올림픽 한국위원회 사무국장은 17일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국가들의 실력이 과거와 달리 상향 평준화됐다”며 “과거 국제기능올림픽에 참가하지 않던 중국이 본격적으로 참가한 것도 영향을 미쳤고, 이번 대회가 러시아에서 열리다 보니, 개최국 이점을 최대한 끌어올린 점도 크게 작용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개최국인 러시아는 경기 직종에 사용하는 장비를 대회 당일에 공개하거나 제비뽑기로 하던 경기 자리 배치도 임의로 진행하는 등 홈 이점을 활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종합우승을 거의 놓치지 않고 해온 한국은 주요 견제 국가였다는 것이다.

◇시대 변화도 한 몫 = ‘시대 변화’도 이번 성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 등 개발도상국은 부상하고, 기존 제조업 선진국인 우리나라는 첨단산업으로 체질을 바꿔 가면서 기능 올림픽 수성에 강한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앞선 경기결과를 살펴보면 한국이 국제기능올림픽에 출전하기 전 일본, 스위스, 독일 등이 ‘기능 강국’의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었다. 국제기능올림픽의 종합순위를 산정하기 시작한 1963년, 우승국은 일본, 준우승국은 아일랜드, 3위는 독일이 차지했다. 첫 종합순위 1위를 기록한 일본은 한국이 부상하기 전인 1971년까지 8번이나 1등을 기록하며 독주 양상을 보였다. 스위스, 독일 등도 3위권 안에 머물며 선전했다.

이들 국가는 여전히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국제기능올림픽의 1등을 향해 따로 엘리트식 도제교육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일본, 독일 등은 산업현장에서 숙련된 기술을 사용하는 것에 집중하고 기능인을 양성할 뿐 대회를 목표로 한 ‘엘리트 양성’에는 큰 무게를 두지 않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기능올림픽을 위해 선수를 발굴·육성하면서 메달을 따기 위한 엘리트식 기능 훈련을 해왔다. 그 결과가 2000년대까지 이어진 것이다. 국제기능올림픽 한국위원회 공식대표인 김양현 한국산업인력공단 능력개발이사는 “전반적인 기술 기능 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학교에서도 소수 엘리트에 기술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보편적인 교육을 하겠다는 분위기”라며 “특정 엘리트 학생을 뽑아서 장기간 훈련시킨다는 것은 이제 한국에선 어려운 일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시스템은 이제 그런 차원을 넘어 독일, 스위스처럼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학교 수업에 충실하며 기술을 가르치는 방향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능인 우대 시급 = 동력제어 종목에 출전한 양수민 선수는 “산업인력공단의 큰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중국 선수나 국내 스포츠 종목 대표단과 비교하면 지원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중국만 해도 기능올림픽 출전 선수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김봉수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공업전자기기’ 직종 국제심사위원은 “중국은 국내 모든 경기장을 국제규격으로 바꾸고, 선수 선발방식도 국제대회와 똑같은 룰을 적용한다. 선수들 전지훈련도 4∼5차례는 기본인데, 한 직종에 한 번의 기회만 갖는 우리 선수들과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은 자체적으로 국제기능대회를 열고 있어 기능인 훈련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2017년 상하이에서, 2019년 충칭에서 국제기능대회를 개최했다.

기능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꾸준히 제기된다. 국제기능올림픽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동만 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특성화고 입학률이 38%로 크게 낮아졌고, 사회적 관심도 줄어든 상황”이라며 “기능올림픽 개최에도 관심이 줄어들어, 최근에는 함부로 도전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은 과거 기능올림픽 강자였다. 현재는 순위가 많이 하락했지만, 관심만큼은 식지 않고 있다. 차차기 개최국 경쟁을 프랑스와 치렀다가 밀린 일본은 그다음 기능올림픽 개최에도 다시 도전하는 분위기다.

◇이제는 ‘기능 한류’로 = 기능올림픽 강국을 넘어 기능 한류로 도약해 국가 브랜드 파워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높이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게 기능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이와 관련, 국제기능올림픽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국제기술교류 지원’은 2010년대 이후 활성화되고 있다. 2008년 7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회장, 인도조직위원회 공식대표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데 이어 2009년 아랍에미리트, 2014년 코스타리카, 2015년 나미비아, 2018년 몽골·잠비아·콜롬비아·코스타리카, 2019년 오만과 기능경기 협력요청과 기능경기 제도 전수 등에 대한 협력 계약 등을 체결했다. 이런 지원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직업훈련 인프라를 쌓고, 그 결과 해당 국가의 경제성장을 지원하는 결실을 맺게 된다. 지난해 10월 국제기능올림픽조직위원회(WSI)는 80개 회원국이 모인 총회에서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기능경기 역량 강화 사업을 우수사례로 표창하기도 했다. 또 기술을 전수받은 코스타리카와 콜롬비아는 국제기능올림픽 참가 역사상 각각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정선형 기자 linea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