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인사이드>“아픈 역사 잊지말자”… 부평토굴·미쓰비시 줄사택 재조명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인천 부평구 함봉산 자락에서 발견된 5번 지하토굴 입구를 탐방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이곳 토굴과 연결된 일본군조병창(현재 미군기지·아래 왼쪽 사진)과 일제강점기 조선인 근로자가 생활했던 미쓰비시 줄사택 모습(아래 오른쪽). 부평구청 제공

인천 부평구 문화유산 보존사업

일본군 시설로 쓰인 ‘부평토굴’
탐사통해 24개 발견·보존 논의

강제동원 흔적 남은 ‘줄사택’
실측뒤 2개棟 영구보존키로

캠프마켓은 일제시대 조병창
미군 기지 반환 뒤 존치 건의

네거티브 헤리티지(Negative Heritage)는 부정적 문화유산을 뜻한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와 중국 뤼순(旅順)감옥, 폴란드 아우슈비츠수용소처럼 역사적으로 시대의 아픔이 담긴 건물이나 장소 등을 말한다.

인천 부평구에도 이 같은 네거티브 헤리티지가 여럿 있다. 일본육군조병창(조병창)과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무자 숙소로 쓰였던 미쓰비시(三菱) 줄사택, 미군의 공습을 피해 전쟁 물자를 옮겼던 지하토굴 등이 대표적이다. 구는 어둡고 불편한 기억을 간직한 지역의 역사적 문화유산을 소중한 ‘희망자산’으로 만들기 위한 사업을 추진한다.

6일 구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지하방공호로 사용했던 ‘부평토굴’에 대한 탐사가 진행 중이다. 부평문화원이 ‘부평토굴 생활문화역사콘텐츠 발굴 프로젝트’ 일환으로 지난 2016년부터 추진해 지금까지 모두 24개의 지하토굴을 발견했다. 구는 이들 토굴 중 역사적 보존가치가 있는 토굴을 활용한 다양한 문화사업도 펼치고 있다. 지난해부터 추진된 ‘지속가능 부평지하호 만들기’ 사업에는 주민과 지역 청소년이 직접 참여했다. 최근에는 ‘부평토굴 토크콘서트’를 열어 전문가들과 함께 아시아태평양전쟁 유적을 재조명해 보는 시간도 마련했다. 당시 참석자들은 부평토굴을 일제강점기 부끄러운 식민지 역사의 잔재라고 감출 것이 아니라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의 장소로 보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부평토굴은 새우젓을 숙성시키기 좋은 ‘새우젓굴’로 더 유명했다. 또 이들은 부평토굴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 명칭을 ‘부평지하호’로 변경해 사용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내년부터는 부평지하호 접근이 용이한 인천 부평구 산곡동 3보급단 601부대(과거 기무부대 송학사) 부지를 활용, 주변을 역사문화 관광벨트화하는 사업도 추진된다. 정혜경 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일제 말기 강제동원과 아시아태평양전쟁 유적’에 관한 그의 연구논문에서 “부평지하호는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본군이 만든 전쟁유적이다”라고 소개했다.

일제강점기 전범 기업 미쓰비시의 조선인 강제동원 흔적이 남아 있는 줄사택을 영구 보존해 기록화하는 작업도 진행된다. 기록화 작업의 첫 단계로 이달부터 내년 3월까지 해당 줄사택에 대한 실측조사와 현황도면 작성, 해체공사에 필요한 용역이 진행될 예정이다. 해체공사는 남아 있는 줄사택 6개 동 가운데 가장 노후한 4개 동을 철거해 폐건축자재는 부평역사박물관에 옮겨 전시하고 상대적으로 상태가 양호한 2개 동을 보존해 아픈 역사를 지닌 소중한 근대 문화유산으로 남길 계획이다. 기록화 보고서에 실린 줄사택의 과거와 현재 모습, 실측도면과 기본적인 현황자료 등은 영구 보존되는 2개 동에 전시된다.

토양오염 등 환경문제로 8년 넘게 반환이 지연되고 있는 부평 캠프마켓(미군기지)도 원래는 일제 말 일본군이 무기제조시설로 사용하던 조병창이었다. 광복 후 미군이 주둔해 사용하면서 반세기 넘게 이곳은 한국인에게 ‘금단의 땅’이었다. 지역 향토사 등 기록에 따르면 1941년 일본군은 이곳 부평에 44만㎡ 규모의 군수기지를 건설했다. 당시 부평은 안개가 많은 지형이어서 연합군의 공습을 피할 수 있었고 항만과 철도시설이 인접해 군수물자 수송이 용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매일신보(1944년 5월 7일자)에는 ‘일본군조병창에 인천중학·인천상업·인천공업·인천소화고녀 등 인천지역 6개 학교에서 360명의 학생 입창식이 있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13∼15살이던 어린 학생까지 강제동원돼 조병창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소총 2만 정과 경기관총과 중기관총 각 100정, 총검 2만 개 등을 생산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캠프마켓에도 당시의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문화재청은 국방부에 캠프마켓 내 건축물 중 일본군이 사용했던 5개 동에 대해 존치 의견을 전달했다. 부평구도 캠프마켓 시민참여위원회와 함께 부지 반환 후 이곳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꾸준히 논의하고 있다.

차준택 부평구청장은 “지역에 남아 있는 아시아태평양전쟁 유적은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불편하고 어두운 기억이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역사이기에 미래 세대에 평화를 위한 마중물이면서 반전과 평화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잘 보존하겠다”고 말했다.

인천 = 지건태 기자 jus216@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