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AI·사이보그… 가까운 미래의 고민 펜끝에 담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윤고은(왼쪽부터), 김성중, 손홍규 심사위원이 지난 7일 문화일보에서 2020 문화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응모작 예심을 진행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 문화일보 신춘문예 올해 응모작 경향

4개 부문 1509명 총 4777편 응모
美·日·그리스 등 해외서 온 지원작도 다수
詩는 도피처 찾는 작품 많고
소설은 ‘포스트 휴먼’ 두드러져

2020 문화일보 신춘문예에는 일상을 소재로 다룬 응모작이 주를 이룬 가운데 퀴어·질병·우주·인공지능(AI)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 접수됐다. 침체 된 사회 분위기, 최근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장르적 요소에 주목하는 문학계 경향이 신춘문예 응모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7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된 신춘문예 예심에 따르면, 시·단편소설·동화·문학평론 등 4개 부문에 1509명이 총 4777편의 작품을 응모했다. 가장 응모작이 많은 부문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시였다. 총 4085편이 몰렸다. 이는 전체 응모작 중 85.51%에 달하는 비율이다. 응모자 1인당 평균 5편 이상 써냈으며 10편 이상 쓴 응모자도 다수였다. 최종 접수된 단편소설은 436편, 동화는 242편, 문학평론은 15편으로 집계됐다. 접수된 단편소설과 동화 중에는 미국, 캐나다, 일본, 그리스,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 보내온 응모작도 다수여서 눈길을 끌었다. 원고지에 정성스럽게 육필로 쓴 작품을 응모한 사례도 상당수였다.

마감 직전까지 응모자들의 신춘문예를 향한 열기가 뜨거웠다. 마감일인 지난 6일 밤까지 직접 방문해 원고를 접수하는 응모자가 많아 수시로 응모작 집계가 이뤄졌다. 밤늦은 시간까지도 방문 접수가 가능하냐는 문의 전화가 수시로 걸려왔다. 마감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접수 기간을 늘려달라며 읍소하는 응모자도 있었다.

부문별 예심은 지난 7일부터 13일까지 치러졌다. 시 부문에는 박형준·문태준 시인, 단편소설 부문(사진)에는 손홍규·김성중·윤고은 작가가 심사위원을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심사숙고 끝에 시 부문에서 16편, 단편소설 부문에서 10편을 본심에 올렸다.

시 부문 응모작을 살펴보면 서정성이 두드러지는 시가 지난해보다 더 늘어난 가운데, 도피처를 찾는 시가 많이 눈에 띈다는 게 심사위원의 일치된 의견이다. 박형준 심사위원은 “일상의 고단함과 일상을 넘어서 피안을 꿈꾸는 시편들이 많았는데, 우주적 현상이나 남극이나 북극의 순록 등 동물과 연결짓는 상상력이 그러한 경향”이라며 “독거 노인, 재소자, 혼자 사는 사람 등 단독자들의 고독한 모습과 병을 앓는 사람들을 통해 마음과 슬픔을 나누고자 하는 시편들이 눈에 띄었다”고 전했다. 문태준 심사위원은 “소외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다룬 시, 자신의 질병이나 내밀한 고백을 담은 시가 많이 보인 것도 특징”이라며 “전반적으로 시가 쉬워졌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단편소설 부문 응모작을 살펴보면 공통으로 가까운 미래를 고민하는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이 많았다. 김성중 심사위원은 “예심을 맡은 작품 가운데에서 유독 AI 캐릭터의 등장이 많아 눈길을 끌었고, 소재가 다양해 읽는 즐거움을 더했다”며 “사이보그나 AI 외에는 사물에 인격을 부여한다거나 동물을 의인화하는 등 ‘비인간’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 ‘포스트휴먼’적인 징후가 소설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손홍규 심사위원은 “전체적으로 어조가 차분했고 일상적인 것들에 새로운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많았다”며 “차분하게 삶을 돌아보고 관계의 의미를 모색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심사 소감을 밝혔다. 윤고은 심사위원은 “간병 등 돌봄 노동을 다룬 작품이 특히 많았고, AI와 인간의 삶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도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문학평론과 동화를 포함해 이번 신춘문예는 오는 17일까지 본심을 거친 후 최종 당선작을 확정한다. 부문별 당선자와 당선작은 2020년 1월 2일 자 문화일보 지면을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