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탄핵 부르는 ‘악마의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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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전임기자

문재인 정권의 청와대는 권력과 생명을 탐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를 닮았다. 파우스트는 마지막 진실의 순간에 “여기서 멈추라”고 외침으로써 구원받았지만, 이 정권은 멈출 생각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악마와의 거래는 집권 초기부터 꾸준히 집요하게 이어졌다. 대통령의 ‘형’과 같았던 오랜 동지가 선거에 당선되는 것을 돕기 위해, 대통령의 오랜 측근이 내부 감찰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여권 실세의 지인이 거액의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개입한 의혹이 끊임없이 터져 나온다. 정권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된 국정농단·권력남용 의혹의 배후에는 거의 예외 없이 문 대통령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대통령의 참모나 비서들이 혼자 날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왕명(王命)을 출납(出納)하는, 즉 대통령의 생각을 받드는 사람들이다.

‘유재수 감찰 무마, 울산시장 선거 개입,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등 ‘유·산·들’ 의혹 사건에 대통령을 공식 보좌했던 실세 이름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 조국 전 민정수석, 한병도 전 정무수석,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김경수 경남지사 등이 이중삼중 출연 중이다. 역대 정권마다 권력남용 의혹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화려한 인맥이 등장했던 경우는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이 드러나면서 탄핵에까지 이르게 됐다. 문재인 정권의 국정농단은 ‘공식 실세’들의 그것이라는 점이 다르다.

청와대에 적을 둔 공직자가 대통령과 “형님 동생” 하는 특정 후보의 당선을 돕기 위해 선거 공약을 지원하고 경쟁 후보에게 공직을 제의하며 매수를 시도했다면, 또 경찰에 당선이 유력한 반대당 후보에 대한 수사를 하명했다면 탄핵감이다. 대통령 참모의 드러난 비리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감찰을 무위로 돌리고 영전까지 시켰다면 심각한 권력남용이다. 여권 실세들과 인연이 있는 인물의 거액 금융권 대출을 성사시키기 위해 압력을 행사했다면 이 역시 악질적인 국정농단이다. 권력자 뒤에서 호가호위하는 비공식 실세와는 달리 공식 실세는 대통령과 직접 소통하거나 의중을 읽으며 실행에 옮길 방도를 찾는다. 이 모든 의혹의 최종적인 탄착점이 대통령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선거 개입 의혹은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구현된다. 따라서 권력의 선거 개입은 법질서 파괴이자 민주주의 유린이며 명백한 국기 문란이다. 지난해 6월 울산시장 선거와 관련한 하명 수사·후보 매수·공약 지원 의혹 가운데 단 한 가지라도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 정권은 존립의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1960년의 3·15 부정선거는 4·19혁명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불렀다. 2004년의 ‘노무현 탄핵 사태’는 당시 노 대통령이 “국민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한 말 한마디 때문에 벌어졌다.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둔 여론조사 연루 혐의로 징역 2년형이 확정된 박 전 대통령의 죄질은 문 정권의 국정농단·권력남용·게이트 의혹에 비하면 깃털처럼 가볍다. 문 대통령의 청와대가 진실의 순간과 마주해 악마의 거래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과거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