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 “‘섹레기’라 불리는 것… 저는 만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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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99억의 여자’종영… 악역 열연 이지훈

“역할에 맞는 연기했다는 증거
조여정 선배에게 많은걸 배워
데뷔전 2년간 인형탈 등 알바”

“‘섹시한 쓰레기’라는 표현, 만족스러웠어요.”

배우 이지훈(사진)은 KBS 2TV 드라마 ‘99억의 여자’를 마친 소감을 이렇게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극 중 재벌가의 딸 희주(오나라 분)의 남편으로 눈치보며 살면서도 희주의 친구 서연(조여정 분)과 외도하는 그의 모습은 도무지 여성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발군의 외모와 점차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내를 위해 최후를 맞는 그를 보며 ‘미워할 수 없는 악역’, ‘섹시한 쓰레기’라는 수식어 등이 붙었다.

“조여정 누나와 호텔에서 외도하는 장면이 나온 다음 날 스태프가 ‘쓰레기인데, 섹시한 쓰레기’라고 불린다고 알려줬어요. 그 표현이 좋았죠. 그 역할에 맞는 연기를 했다는 증거이니까요. 그 안에서도 나름 제 매력을 보여드리려 노력했는데 그 부분을 시청자들이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이지훈은 ‘99억의 여자’에서 선배이자 연상인 조여정, 오나라와 호흡을 맞췄다. 나이 차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막상 방송이 시작되자 이런 걱정은 씻은 듯 사라졌다. 적극적으로 다가서며 소통하려는 후배 이지훈의 손을 두 여배우는 기꺼이 잡아줬다.

“희주와 전화통화를 나누며 죽어가는 마지막 장면을 촬영할 때는 오나라 누나가 실제로 저와 통화를 해주셨어요. 보다 확실한 감정을 잡기 위해 새벽에 문자를 드렸는데 집에서 흔쾌히 전화를 받아주셨죠. 촬영 내내 6번 정도 통화를 했어요. 조여정 누나와 함께 할 때는 연기하는 자세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현장에서 한 번도 웃음을 잃지 않고 주위를 배려해 주셨죠. 항상 ‘괜찮다’고 얘기하는데, 얼마나 고충이 클까 싶었어요. ‘이렇게 모든 것을 아우르니 주연 배우구나’라고 새삼 느꼈죠.”

이지훈은 청춘 스타의 등용문이라 불리는 드라마 ‘학교 2013’를 통해 데뷔했다. 하지만 그는 동료 배우들과는 다소 다른 길을 걸어왔다. 젊은 배우들이 기피하는 편인 사극 ‘육룡이 나르샤’와 ‘마녀보감’을 통해 연기력을 다졌고 MBC 사극 ‘신입사관 구해령’으로 지난해 말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조연상을 받았다. ‘청춘 스타’보다는 ‘연기파 배우’가 그가 바라보는 지향점이다.

“IMF 사태 후 집안이 어려워지고, 데뷔 전 2년 동안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어요. 아침에 신문배달하고, 놀이동산에서 인형탈을 쓰고, 압구정 3번 출구 앞 카페에서 일하는 등 하루에 3개씩 뛴 적도 있죠. 그렇게 한 달에 123만 원을 벌면 연기 수업료로 70만 원을 내고 나머지로 생활을 했어요. 그렇게 준비하다 보니 연기가 더 절실해졌죠. 다행히 제 얼굴이 선이 굵거나 특색있지 않아서 뭘 씌워놔도 그 분위기가 나는 것 같아요. ‘연기하기 좋은 얼굴’이라는 말을 들을 때 정말 기뻐요.”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