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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화논단 게재 일자 : 2020년 02월 14일(金)
크립토 파문과 ‘사이버 보안’ 중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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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주 고려대 초빙교수 前 외교부 국제안보대사

냉전 초기인 1950년대부터 50년이 넘게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외국 정부의 기밀 정보를 염탐했다는 보도는, 한동안 잊고 있던 사이버 보안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지난 13일 자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CIA가 스위스의 유명한 암호통신회사인 크립토(CRYPTO)를 내밀히 소유하면서 같은 회사 장비를 써 온 한국과 일본, 인도 등 120여 개국의 국가정보원 및 군인과 외교관들의 기밀 통신을 훔쳐봤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기술 진보에 비례해 각국의 정보 수집 방식도 발전해 왔다. 이 순간에도 모든 주권국가는 가용한 인적·물적 수단을 총동원해 정보 수집에 나서고 있다. 정보 수집 방식 중 대표적인 것은 인적정보(HUMINT)와 신호정보(SIGINT)·영상정보(IMINT)인데, 이 중 가장 전통적인 방식은 간첩과 협조자에 의존하는 인적정보다.

정보 활동에는 동맹국도 우방도 없고, 오직 국가의 이익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사실이 이번 정보 유출 파문으로 재차 확인된 셈이다. 지난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대규모 비밀 문건 폭로에 이은 이번 파문으로 미국의 과도한 정보 수집 활동이 다시금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보 수집 활동을 국제법적으로 처벌할 근거는 없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중국 정부가 화웨이에 개입할 우려가 있다면서 동맹국 및 우방들에 화웨이의 5세대(G) 장비를 사용하지 말도록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는데, 이번 정보 유출 사건은 미국 정부의 화웨이 관련 압박 모멘텀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한편, 사이버 기술의 고속 발전은 은밀한 국가 정보 활동의 수행을 부추길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사이버 공격의 원점 추적이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점은 정보 활동과 같은 비밀스러운 임무 수행에 적합하다. 또한,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신기술은 국가의 정보 수집에도 쓰일 수 있는데, 자유민주적 개방사회는 통제형 폐쇄사회보다 많은 취약점을 갖고 있다. 특히, 초연계 사회일수록 외부의 사이버 공격에 쉽사리 노출되며, 이는 국가 정보 수집 영역에서도 그대로 해당된다.

이번 크립토의 정보 유출 사건을 보면서, 현재의 엄중한 국가안보 상황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국가 정보 수집은 물론, 국가안보 강화 차원에서 사이버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더욱더 고민할 때다. 북한 비핵화도, 평화협정도 미결인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라는 대한민국의 3대 핵심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국가 사이버 보안을 다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북한의 김정은은 집권 초기부터 핵과 사이버가 ‘공화국’을 유지하는 양대 보검(寶劍)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북한은 약 7000명 규모의 막강 사이버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언제든 우리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자행할 준비가 돼 있다는 얘기다. 이는 폐쇄적인 북한으로서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비대칭 공격 수단이다.

북한이 우리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가할 경우, 우리도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 조치를 은밀한 방식으로 취할 것을 촉구한다. 적이 사이버 공격 사실을 부인한다면 우리도 사이버 반격 사실을 부인하면 된다. 이는 또한 추가적인 사이버 도발을 억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울러, 첨단 사이버 기술을 계속 개발하면서 사이버 요원을 양성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특정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존립과 직결되는 중차대한 사안임을 유념해 중단없이 시행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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