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대한민국 불공정 리포트>‘앱’ 사용능력 따라 세대간 ‘갭’… 금융·쇼핑 혜택 못받는 노년층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하안송 기자

■ 문화일보·공정성연구회 분석 - 8 커지는 디지털 디바이드

마스크 구하기도 IT 신공 활용
새로고침 통해 새 물량 낚아채
은행 ATM·햄버거집 키오스크
노인들은 이용못해 장시간 대기

홈쇼핑 앱 주문시엔 할인 혜택
은행 앱 금리 우대서도 소외돼
경제격차 넘어 권력격차로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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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구성원 간의 디지털 격차, 즉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가 심각하다. 디지털 격차는 단순한 정보 격차를 넘어 경제적 격차, 권력의 격차를 낳게 된다.

전북 전주에 사는 직장인 김모(38) 씨는 지난달 28일 인터넷 쇼핑몰에서 개당 약 800원에 고향 부모님께 보낼 마스크 50장을 사는 데 성공했다. 자영업을 하는 김 씨의 부모님은 “주변 편의점에서 4000원을 줘도 마스크를 구할 수가 없고, 어려워서 인터넷 쇼핑몰 이용도 못 하겠다”며 김 씨에게 마스크 구매를 부탁했다고 한다. 이후 김 씨는 10곳이 넘는 약국과 마트를 1시간 넘게 돌아다녔지만 마스크를 구하지 못했다.

그는 바로 온라인 쇼핑몰로 눈을 돌렸다. 먼저 회사 동료와 생활 정보 카페 등을 통해 쇼핑몰 ‘새로 고침 신공’을 습득했다. 새벽 시간대 온라인 쇼핑몰에 풀리는 마스크를 장바구니에 담은 뒤, 재고가 나타나 주문이 될 때까지 계속 PC의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는 방식이었다. 일시품절 마스크에 대해 계속 구매 시도를 해 1∼2박스씩 풀리는 물량을 낚아채 가는 방식이었다. 김 씨는 1시간가량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른 후, 마스크를 살 수 있었다. 현재 인터넷 카페에서는 김 씨처럼 ‘새로 고침 신공’을 이용해 ‘마스크 득템(아이템 획득)’에 성공했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김 씨는 “부모님은 며칠을 고생해도 마스크를 못 사지만, 나는 운이 따르면 1∼2시간이면 마스크를 살 수 있다”며 “부모님의 인터넷 주문 부탁이 귀찮을 때도 있지만, 부모님 사정을 생각하면 모른 척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사람 없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에 두고 30분 기다리는 노인들 =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을지로의 한 시중은행 지점에는 고객 16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모니터에 떠 있는 예상 대기 시간은 20분이었지만 앞선 사람의 용무가 길어지면 대기시간은 30분을 훌쩍 넘겼다. 장노년층 고객들 사이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중 종이통장과 현금 10만 원을 손에 쥔 노인이 은행에 들어섰다. 잔돈으로 바꾸려는 거냐고 묻자 노인은 예금할 돈이라고 대답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ATM에서 금방 처리할 수 있는 업무다. 은행원이 ATM을 가리키며 “저기서 도와드리겠다”고 말하지만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나는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결국 직원이 노인을 대신해 ATM으로 업무를 처리했다.

패스트푸드 매장 내 사정도 비슷하다. 같은 날 롯데리아 동묘역점을 방문한 이창선(67) 씨는 ‘지금은 셀프 오더 타임’이라고 적힌 키오스크(무인계산기)를 지나쳐 직원을 불러 주문을 했다. 이 씨는 “버튼을 누르고 카드로 결제하는 게 습관이 안 돼 불편하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계산 방식이지만 나에게는 이상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롯데리아 영등포역사점에서 만난 강영분(72) 씨는 키오스크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혼자 아무리 (키오스크를 써보려) 해도 안 돼서 직원한테 부탁했는데 버튼 몇 개 누르니 되는 거야. 얼마나 민망하던지. 이제는 그냥 포기하고 카운터에 가서 주문한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패스트푸드점 여섯 군데를 돌아다니며 만난 60세 이상 고객 16명 가운데 1명만 키오스크로 주문을 했다. 나머지는 카운터에서 직원을 따로 불러 직접 주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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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앱 쓰지 않으면 손해 = 홈쇼핑 업체들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주문 고객을 우대한다. 국내 7곳의 홈쇼핑 업체를 대상으로 주문 방식 차이에 따른 가격 차이를 확인한 결과, 전화 주문보다 앱 자동 결제 방식을 통해 상품을 주문할 때 훨씬 더 많은 할인 혜택이 적용됐다. 지난달 26일 방송된 NS홈쇼핑의 생식은 상담원과의 전화 결제 시 19만8000원이었지만, 앱 결제 시 앱 전용 쿠폰이 적용돼 16만6720원에 상품을 살 수 있었다. 앱 사용 여부에 따라 3만1280원의 가격 차이가 나는 것이다. 또 더블유쇼핑의 운동화도 상담원과의 전화 결제 시에는 정가 9만9000원, 앱 결제 시에는 8만9100원이었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하나은행의 ‘급여 하나 월복리 적금’은 온라인으로 가입할 경우에만 0.1% 금리를 더 제공한다. 같은 은행의 ‘셀프 기프팅 적금’은 최대 연 3.10%를 보장하지만, 그중 1.0% 금리 적용은 매월 1회씩 인터넷·스마트폰 뱅킹의 ‘선물상자’에 접속해 지정된 퍼즐을 4번 완성해야 받을 수 있다.

버튼만 누르면 되는 미션이지만, 인터넷 활용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에게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KB국민은행의 ‘KB맑은하늘 적금’과 ‘KB국민ONE 적금’은 온라인을 통해 가입해야 0.2%의 금리 우대를 받을 수 있다. 신한은행의 ‘헬스플러스 적금’, 우리은행의 ‘우리웰리치 100적금’ 등도 온라인으로 가입해야 0.1% 금리를 더 제공한다. 고금리 스마트폰 전용 상품도 많다. 국민은행 ‘KB Smart★폰 적금’(최대 2.10%), 신한은행의 ‘신한 가맹점 Swing’(최대 3.10%), ‘신한 스마트 적금’(최대 2.0%), 우리은행 ‘우리WON모아 적금’(최대 4.00%·6개월) 등은 모두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이다.

◇사회적 불평등 해소 위한 노력 필요 = 이처럼 은행들이 온라인 상품에 더 많은 혜택을 주고 있지만 고령층은 모바일 뱅킹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 한국은행이 2018년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 조사대상자 중 최근 3개월 내 일반은행의 모바일 뱅킹 서비스를 이용한 응답자의 비율은 56.6%로 나타났다. 연령대별로는 30대에서 이용비율이 87.2%로 가장 높았으며 60대 18.7%, 70대 이상 6.3%에 불과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실시한 2018년 디지털정보 격차 실태조사를 봐도, 장노년층의 디지털 역량 수준과 활용 수준은 각각 일반 국민의 50%와 62.8%로 상당히 저조했다.전문가들은 디지털 디바이드로 인한 불공정성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박창희 숭실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노년층 스마트 미디어와 디지털 복지’ 논문에서 “디지털 격차는 경제적 격차뿐만 아니라 정보와 지식의 격차, 더 나아가서는 권력의 격차로 이어지며 다른 사회적 불평등을 유발하거나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기은 기자, 장은현·조윤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