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거짓말 잘하면 성공… 현실개혁 멈추고 문·사·철 공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석연 변호사는 책으로 둘러싸인 자신의 사무실에서 “그동안 세상을 바꾸려 애썼으나 허장성세였다고 느낀다”며 “이제 역사, 문학책 속에 더 침잠하며 공부 모임을 통해 나 자신을 추스르고 익어 가는 시간을 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곽성호 기자

통합당 공관위원장 대행서 자유인으로 돌아온 이석연 변호사

헌법에 입각 세상 바꾸고자 노력
총선결과 보며 時運 중요성 느껴

절대권력은 견제세력 없어 위험
완장 찬 이 판치는 거 보면 섬뜩
오거돈 같은 사태 또 일어날 것

현실 벽 직시하고 공부에 열중
세상 새롭게 성찰 하고 지혜 모아
길없는 자리서 ‘마을’ 다시 지어

이석연(66) 변호사가 최근 지인들에게 SNS로 보낸 글이 화제가 됐다. ‘봄의 꽃자리에 연두색 신록이 탐스럽게 펼쳐지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글은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빌려 ‘나만의 삶을 찾으려고 합니다’라는 뜻을 전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무엇을 더 구하겠다고 허송하다 60 중반이 넘어서야 귀거래사를 읊조리게 되었는가!…지금부터라도 이문회우(以文會友·논어에 나오는 문구로 글로써 벗을 모은다는 뜻) 하면서 자유인으로 살고자 합니다.’

소위 유명 문학인들도 직설적 구호로 정치 메시지를 던지는 시대에 은유와 상징의 문장으로 자신의 뜻을 유장하게 전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변호사에게 만남을 청해 그가 대표로 있는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서울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눴다. 그의 사무실은 법률 서적뿐만 아니라 역사, 문학, 철학 책들과 고졸한 서화로 둘러싸여 있었다. 모양으로만 보면, 문·사·철(文·史·哲)을 공부하는 학자의 방이었다.

“사기창성(史奇創成), 이 글씨는 성파(城坡·황우연) 선생이 써 준 것인데요, 제 평소 소신을 사자성어로 압축한 것이에요. 역사와 기적은 창조되어진다.”

이런 의기를 지닌 이가 어찌 60대 중반에 귀거래사를 읊게 됐을까. “제가 그동안 우리 사회 현안에 대해 발언도 하고, 법제를 고치기 위해 마음을 던지기도 했지요. 정치인이 아니면서 정치인 행보를 한 셈이에요. 그 마지막 종착점으로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 직무대행까지 한 것인데, 이번 총선 결과를 보고 나서 제가 헌법 정신에 입각해 세상을 바꾸자고 했던 것이 허망하게 느껴졌어요. 그동안 기고만장, 허장성세로 살아온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를 추스르고 침잠할 시기가 필요하다는 자각이 왔지요. 그 생각을 정치적 용어가 아닌 책과 문학의 세계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는 이번 선거에서 예기치 않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며 시운(時運)을 새삼 생각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시운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자유인 선언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그만둘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止不殆)’는 노자의 말을 인용했다. 또 노욕(老慾)을 경계한 법정 스님과 로마 철학자 툴리우스 키케로의 말도 암송했다. “정치권의 누구를 지칭할 것도 없이 제때 물러나지 않음으로써 자신과 친족을 욕되게 하는 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는 물러난다고 해서 현실에 담을 쌓는다는 게 아니라고 했다. 현실 벽을 직시하고, 역사와 문학 공부에 더 몰두하며 여행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성찰함으로써 그 지혜를 집약해서 책을 펴낼 계획이라고 했다. 남송(南宋) 시인 육유(陸游)가 유산서촌(遊山西村)에서 읊은 것처럼 길 없는 듯싶은 자리에서 또 다른 마을이 나타날 것을 믿기 때문이다.

“공부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데 더 활성화하고 싶어요. 국가 난제를 다루기도 하지만, 광개토왕비를 연구하는 모임도 있어요. 아시다시피, 문학 소모임도….”

독서, 역사, 여행에 관한 책을 예닐곱 권 저술한 이 변호사는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이다. 세계한글작가대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할 만큼 문학인들과의 교우를 즐긴다. 그는 평생을 책 속의 지혜와 함께하려고 애써왔다고 자부한다.

“제가 고향(전북 정읍)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6개월 만에 고졸 검정고시 14개 전 과목에 합격했어요. 그런데 대학 진학을 미루고 김제 금산사에 들어가 22개월을 머물면서 책 400여 권을 정독했어요. 그때 읽었던 사마천 ‘사기’와 괴테의 ‘파우스트’는 저에게 평생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청소년기부터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갔던 그는 법조인이 된 후 시민운동을 했고, 돈 안 되는 공익 소송을 통해 수도 이전법, 군 가산점 위헌 판결 등을 이끌었다. 그는 법제처장을 할 때도 정권에 고개 숙이지 않고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정치 주변에 있었으나 막상 정치인이 안 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했다. 서울시장 선거 후보 등으로 추대됐을 때 가족이 정치 참여를 완강하게 반대해 준 것이 참으로 고맙다는 것이다. “정치는 비정하고, 거짓말 잘하고, 끈질기고, 시운이 닿는 사람들이 성공하거든요. 우리 정치인들 보면, 속된 말로 무식해요. 공부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아요. 보좌관이 써 준 것만 읽습니다.”

이 변호사는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이 비판한 지식인의 5대 특징을 우리 정치인들이 갖고 있다고 했다. 거지 근성 강하고, 고마워할 줄 모르고, 남 핑계 대기 좋아하고,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도 잘난 체하고, 무책임하다는 것.

그는 이번에 통합당 공관위원장 대행을 할 때 위원들에게 “매일 도살장에 가는 심정이겠으나 끝까지 최선을 다함으로써 책임을 다하자. 더 난장판이 되게 하지는 말자”고 설득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번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지만, 절대 권력의 탄생으로 그 폐해가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유와 창의의 헌법 정신이 퇴보하고 결과의 평등에 따라 철저히 나눠 먹는 남미식 사회주의로 갈 수 있습니다. 완장 찬 이들이 세상이 바뀐 것을 보여주겠다며 설치는 것을 보면 섬뜩합니다. 절대 권력은 내부로부터 붕괴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오거돈 같은 경우가 한두 건이 아닐 것입니다. 절대 권력은 견제 세력이 없으니 무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국가가 몇 십 년 퇴보할 수 있으니 잘해 줬으면 합니다.”

이 변호사는 그동안 공익 소송을 숱하게 했지만, 그 혜택이 엉뚱한 사람들에게 가는 것을 보며 그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고 전했다.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는 어려운 분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한 사람이라도 그 억울함을 풀어드리는 데 애쓰고 싶습니다. 사무실 운영 경비를 벌어야 하지만(웃음), 그런 일이 저에게 맞으니까요. 그런 분들 있으면 저를 찾아오라고 하셔요.”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