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철학 집대성…‘사상의 최전선’ 출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정호 작가

코로나 그 이후의 세상…‘탈인간’을 사유하다

- 본지 연재 ‘21세기 사상의 최전선’ 단행본 출간

작년 9월부터 반년간 매주 연재
대표적 사상가 25인 심층 분석
이원론 토대 인간중심주의 탈피
지구와 공생의 정치·윤리 추구
새 시대의 인문학적 담론 집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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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과 이후를 말하고 있다. ‘이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이후’는 장담할 수 없다. 선례가 없는 것을 ‘새로운 기본값’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해진다.

문화일보가 지난해 9월부터 6개월간 매주 연재했던 ‘21세기 사상의 최전선’은 뜻하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시대’를 예고하는,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최전선의 인문학 담론을 집대성한 기획 시리즈였다. 이번에 ‘최전선’ 시리즈를 공동기획한 이감문해력연구소에서 ‘21세기 사상의 최전선’(이성과감성)을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과거 300여 년간 서구 주도로 이뤄져 온 근대주의 사상과 그에 기초한 사회변화는 인간/비인간, 정신/물질의 이원론을 토대로 인간중심주의를 추구했다. 그 결과 지난 20∼30년 사이 지구 행성은 자연 파괴와 기후 위기, 인수공통전염병의 등장, 빅데이터의 감시 등 전례 없는 새로운 문제들에 봉착했고, 이른바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의 위기라고 스스로 진단하게 됐다. ‘최전선’ 시리즈에 소개된 사상 대부분은 ‘인류세’ 이후 그 극복을 위해 등장한 사유다. 국내 학계의 담론은 여전히 30년 전 사상의 회고에 머물러 사유의 지체 현상을 보여왔다. 시리즈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기획됐다.

책은 브뤼노 라투르부터 도나 해러웨이, 프리드리히 키틀러, 캉탱 메이야수, 그레이엄 하먼, 그레구아르 샤마유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대표적 사상가 25명의 최신 사상과 새로운 사유의 틀을 국내 30∼40대의 신진연구자 23명이 참여해 체계적으로 소개했다. 핀란드의 뉴미디어 학자인 유시 파리카의 경우 필자로서 시리즈에 참여했고 자신의 블로그에 이번 기획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들의 21세기 사상은 더 이상 지구를 인간의 정신이 지배해야 할 비인간 물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일부를 이루면서 비인간과 함께 형성하는 공동세계이자 바람직한 공동세계를 실현해나갈 공생의 정치와 윤리를 추구하고 있다. 크게 ‘신유물론’이라는 존재론적 전회(轉回)를 기반으로 객체지향 존재론, 사변적 실재론,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신유물론적 페미니즘, 미디어 고고학, 비판적 디지털 미디어 연구, 인간 너머의 지리학, 현실화된 드론 무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유가 등장했다.

이처럼 21세기를 꿰뚫는 사상은 탈인간중심주의다. 사물이 행위자로서 사회에 간여한다는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ANT)’은 다양한 분야의 사유에 중요한 연결점이 된다. 사실 이번 ‘코로나19’라는 인수공통전염병을 놓고 봐도 동물과 미생물, 그 전파과정에 개입한 비행기, 예방을 위한 마스크 등 비인간 행위자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해러웨이는 ‘인류세’란 용어에도 인간만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오만이 서려 있다고 비판하고 아예 자본세(資本世·Capitalocene)를 내세워 인간 중심성을 배제하고 자본주의가 지구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고자 한다. 책에는 사상가의 학문 분야, 사상적 입장, 영향·비판·동료 관계에 있는 인물들 등을 일람표로 제시했다. 또 국내 최고 작가인 이정호, 변영근, 이부록이 사상가의 핵심을 감각적으로 해석한 26점의 올컬러 일러스트레이션도 큰 볼거리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