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문화 시점>K-드라마, 이젠 ‘넷류’다

드라마 한류, 넷플릭스와 결합하며 전세계와 실시간 연결… 사랑의 불시착·이태원 클라쓰 등 인기 행진 ‘새지평’ 열어

K-드라마의 새 지평이 열리고 있다. ‘겨울연가’(2002) 이후 18년간 ‘한류(韓流)’를 이끌어온 K-드라마가 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넷플릭스와 결합하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신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사회적 격리’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은근하지만 매우 빠른 변화의 물결이다.

조선 시대 좀비 액션 ‘킹덤’이 1, 2편에 걸쳐 폭발적 화제를 모은 데 이어 최근엔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하이바이, 마마!’ ‘인간수업’ 등이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가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으며 인기 순위 리스트를 점령해가고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도깨비’ ‘인간수업’ ‘하이바이, 마마!’.

국내 시청률 21.7%를 기록했던 ‘사랑의 불시착’은 현재 동남아와 일본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태국과 필리핀, 베트남 넷플릭스에서 시청 순위 1∼2위를 달리고 있고, 일본 넷플릭스에서도 지난달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인도 넷플릭스에선 17위로, ‘킹덤’(45위)과 함께 ‘톱100’ 안에 들었다. 종영한 지 3개월이 지난 걸 감안하면 이례적인 결과다. 그만큼 인기가 장기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3∼4월 인기리에 마무리된 ‘이태원 클라쓰’나 ‘하이바이, 마마!’도 마찬가지다. 동남아 각국의 넷플릭스에서 ‘사랑의 불시착’과 시청 순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베트남에서는 이 드라마들을 포함해 ‘톱10’ 중 7편이 K-드라마다.

미국과 유럽, 중동, 라틴 아메리카 등지에서도 ‘사랑의 불시착’ 같은 K-드라마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영화 매체 스크린랜트는 지난 3일 ‘당신이 ‘사랑의 불시착’을 재미있게 봤다면 그다음으로 볼만한 K-드라마 톱10’을 선정했다. 그 안에는 국내 시청자들도 미처 다 챙겨보지 못했을 최신작인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김비서가 왜 그럴까’ 등이 포함돼 있다.

영국도 K-드라마 최신작을 많이 추천했다. 글래머매거진은 1일 ‘넷플릭스에서 보는 인기 K-드라마 11편’으로 ‘이태원 클라쓰’ ‘사랑의 불시착’ 등을 꼽았다. 이 매체들은 우리 말 ‘몰아보기’에 해당하는 ‘빈지 워칭(Binge Watching)’이란 표현으로 K-드라마에 대한 열기를 나타냈다.

조선 시대, 재벌, 군대, 북한 등 어찌 보면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의 드라마들이 전 세계에서 각광받는 이유는 뭘까.

첫째는 충분히 매력적인 배우들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사랑의 불시착’의 성공 요인을 5가지로 진단하면서 현빈과 손예진의 매력을 첫손에 꼽았다. 잘생긴 한류스타 현빈과 손예진 때문에 현지 SNS에는 ‘빈과 진(#BinJin)’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필리핀의 필리핀스타도 3일 “한류스타 현빈이 ‘사랑의 불시착’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현지에서 ‘캡틴 리’로 통한다”고 전했다. 현빈은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지난달 필리핀 통신회사 스마트와 광고모델 계약을 했다.

둘째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국적 소재는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이야기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드러난 북한을 바라보는 해외 팬의 시각을 보면 알 수 있다. 영국의 가디언은 ‘중독적이고 낭만적인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으로 낙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처음엔 남북 갈등에 관심이 있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 묘사된 북한은 용감하고 낙관적이며 건전하다”면서 “분단돼 있지만 남북 공통의 한국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감동을 준다”고 평가했다.

셋째는 ‘겨울연가’ 이후 진화를 거듭한 K-드라마의 높은 완성도에 있다.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스토리와 구성, 소재의 개연성, 컴퓨터그래픽(CG) 기술 등이 할리우드 영화와 견줘 손색이 없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증강현실(AR) 게임을 드라마에 그대로 녹여내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이태원 클라쓰’와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웹툰에서 검증된 스토리를 바탕으로 영상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큰 몫을 했다. 방송과 동시에 공개하는 넷플릭스의 ‘실시간’ 서비스가 K-드라마의 공급과 소비 방식 자체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90여 개국 동시 송출이 가능해지면서 K-드라마와 시청자 사이의 ‘시차’가 획기적으로 줄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Untact·비대면) 소비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까지 주요 관객으로 끌어들였다. 게다가 영어는 물론 일본어와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 다국어 자막 서비스를 실현해 봉준호 감독이 말한 ‘자막의 1인치 장벽’마저 없앴다. 가히 한류 3.0 시대를 지나 ‘넷류(Net流)’라고 할 만하다.

업계 전문가들은 “영어로 된 가사, 리듬과 멜로디 의존성이 큰 K-팝은 그렇다 치고 스토리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영화나 드라마는 번역이라는 마지막 장벽이 존재했는데 이제는 넷플릭스가 그것을 실시간으로 해결하고 있다”면서 “풍부한 콘텐츠, 실시간 플랫폼으로 시공을 초월한 새로운 K-드라마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