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혈맹에 배신감 안겨준 駐美대사 실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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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국제법

코로나19 팬데믹이 미국과 중국을 신(新)냉전으로 몰아가고 있다. 화웨이 사태 이후 한때 봉합되는 듯하던 양국 관계는 코로나19 발원지와 확산 경로 논쟁으로 번졌다. 지난달 16일에는 미국이 중국을 제외한 경제번영네트워크(EPN)를 구상 중이란 보도가 나와 우방들 결집에 나설 조짐이다. 문제는, 미·중 간에 코로나 신냉전이 심해질 경우 한국도 양국 중 어느 쪽에 줄을 서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는 점이다.

이 민감한 시기에 현직 주미(駐美) 대사의 발언이 연일 언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어 우려스럽다. ‘한국은 이제 미국과 중국 중 선택할 수 있다’는 표현을 쓴 게 문제의 발단이고, 미 국무부 동북아담당 차관보가 ‘한국은 이미 민주주의를 선택했다’고 맞받으면서 논란이 커졌다. 주미 대사관에서는 대사의 발언 전문을 공개하면서 취지가 정확히 전달되지 못한 면이 있다고 했지만, 미·중 간 갈등이 깊어지고 한국의 선택이 요구되는 미묘한 상황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관의 발언으로 적절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은 결코 간단치 않다. 그런데 30년 넘는 경험을 갖춘 외교관의 발언이 논란을 부르는 것은 결코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 당국이 간담회 전문을 공개하면서 의도를 갖춘 발언이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용어의 선택과 표현의 경중이 오해를 야기할 수 있었음은 전문에서도 나타난다. 문맥상 미·중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하는 것보다 지혜로운 방향을 찾겠다는 의미를 담으려 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굳이 그 앞의 표현이 왜 필요한가. 일반 외교관으로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고위급의 직무를 경험했고, 정치가로서의 경륜까지 갖춘 대사의 발언이기에 상대방에게 어떤 의도가 있다는 오해를 살 수 있었다. 미·중 양국이 자국 지지를 직간접으로 요구하는 미묘한 상황이니 더욱 그렇다.

매우 우려할 만한 점은, 외교사절의 발언이 외교가나 정책 담당자들 간의 관심에서 그치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특정 뉴스가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삽시간에 그 영향을 확산시키는 인터넷과 SNS의 시대다. 미국 당국자가 오해할 수 있는 발언은 곧바로 미국민에게 전해져 양국 국민 간의 정서적 갭이 커질 수 있다. 그 경우 당국자 간의 오해를 푸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노력과 정성이 필요해진다.

오래전 미국에서 경험한 일이다. 우연히 만난 백발의 미국인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대답에, 자신은 6·25 참전용사라며 한국인을 만나 기쁘다는 표정으로, 한국의 공산화를 막고 자유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친구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며 슬픔을 내비쳤다. 그런 인식이 평균적 미국인의 생각이라면, 자신들이 도운 나라가 오랜 인연을 외면하고 적대국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느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우리 외교사에서 자주 인용되는 고려 시대 서희는, 거란군의 대규모 침공으로 국토가 잠식당할 누란의 위기에서 외교적 담판으로 적군을 돌려보내고 고토까지 회복했다. 대군의 위협 앞에서도 기개를 흩뜨리지 않으면서 적장을 설복한 그의 외교력은 송나라 사신으로 갔던 경험과 당시 국제 정세를 꿰뚫은 통찰력에서 나왔다. 그 기개와 노련함은 오늘날 우리 외교관들이 본보기로 삼아도 손색이 없다.

끝으로, 외교관은 총을 들지 않고 국가 이익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하는 군인과 같다는 외교가 명언을 덧붙여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