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부르고 또 두드리는 말…“날 좀 사랑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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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 이원하 지음 | 달

첫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로 시 부문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던 이원하 시인이 첫 산문집을 펴냈다. 역시, 제주에서 혼자 사는 이야기이고, 술은… 아, 그 부분은 잘 모르지만. 한데, 이건 알 것 같다. “혼자 살고 술은 약하다는 말은 사실 구조 요청 메시지였어요”로 라며 덜컥 속마음부터 털어놓는 산문집의 첫 장. 시집을 읽은 사람이라면 ‘아!’하는 짧은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것은 부르고, 또 두드리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날 좀 사랑해줘”라는.

시집으로 누군가에게 SOS를 보냈던 이 시인은, 이제 그 대상을 공개한다. 산문집 제목에서 ‘꽃’이라고 명명한 바로 ‘그’. 제주의 취한 어느 밤, 시인의 이마에 ‘싹둑’ 앞머리를 만들어주고, 이불을 곱게 깔아주고는, 혼자 서재로 들어가 자 버린 남자. 아, 누굴까.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그’가 몹시 흥미롭고, 그를 사랑해 어쩔 줄 모르는 시인이 귀엽고, 이 사랑이 어떻게 전개될지 너무 궁금하여,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다. 촘촘하고 매끄러운 추리 소설을 읽듯, 한숨에 끝까지 달려가고 마는 것. 시인의 첫 시집이 그랬듯. 그렇게 산문집은 전작과 결을 같이 하면서, 보다 솔직하고, 과감하고, 내밀하다. 시인이 되기 위해 제주에 내려가 살며 느낀 외로움과 고독이 짙게 내려앉아 있지만, 한 남자를 향한 수줍은 욕망을 섬세하게 덧입어, 애틋하고도 발칙한 기운을 발산한다. 첫 장부터 그렇고, 계속 그렇다.

“부끄러웠지만 눈 감을 수 없었어요. 눈 감으면 뽀뽀해야 하잖아요. 비밀인데, 남자의 바지춤 아래를 훔쳐봤어요. 저 안에는 어떤 모양이 있을까요” “한 사람의 ‘그것’만 궁금했어요. 그가 피부에 딱 붙는 삼각 수영복을 입고 오는 바람에 나의 본능이 자연스레 활동했던 거예요.” “잘 익은 식빵처럼 생긴 발바닥도 이미 봤어요. 그가 먼 산을 바라볼 때 귓구멍도 봤어요. 하품할 때 목구멍 속도 봤어요. 이제 그곳만 보면 그를 향한 나의 사랑은 완벽해져요.”

그런데, 이 사랑, 짝사랑이다.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자꾸 계산하게 되었어요. 내 얼굴이 별로 안 예뻐서 제주에 안 오나 싶어 종일 거울만 본 날도 있었어요.”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죠. 시를 쓰면 예뻐할 것 같았고 나아가 시인으로 등단하면 더 예뻐할 것 같았어요.” “당신에게 놀아나는 내 인생이 좋아요. 당신으로 탕진하는 내 삶이 좋아요.” “당신에 대한 불안으로 시집 한 권을 완성했어요. 머리 위로 기울어진 불안에서 수많은 문장이 쏟아졌어요.”

이쯤 되면, 일면식도 없는 그에게, “제발, 좀 받아주라”라는 말을 하고 싶다. 초조함, 서운함, 기쁨, 충만함, 설렘, 그리고 불안. 이 시인이 느끼는 모든 감정은 ‘그’로 인한 것이고, 시인은 “백 퍼센트의 확률로 슬프거나 아플 때 쓴다. 만약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행복해서 시를 써내지 못할 것 같다”고도 했다. 아아, 시를 계속 보려면, “받아주지 말라”고 협박해야 하는지.

이 시인은 이번 산문집에서 “시집 출간과 동시에 불안도 사라질 거라고 난 믿어요”라고 한 과거의 말도 담았다. 과연 그 믿음대로 됐을까. 여전히 온통 ‘그’로 가득한 산문집만으로는 알 길이 없다. 그리고 약간의 ‘감’으로 추측해보는, 이 남녀의 사랑의 행방은, 왠지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밝히지 않으려 한다. 220쪽, 1만4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