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정부가 빚내 뿌린 돈, 갚을 주체는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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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정부가 끝내 3차 추경안을 편성했다. 그 규모가 1, 2차의 23조9000억 원보다 더 많은 35조3000억 원이나 된다. 그리하여 올해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내세우며 3차례에 걸쳐 편성한 추경 규모가 60조 원에 가깝다. 3차 추경에서 11조5000억 원은 지출 구조조정과 기금재원 활용을 통해 조달하고, 나머지 23조8000억 원은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올해 정부의 재정적자는 112조2000억 원에 이르고, 국가채무는 840조2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경제위기 조기 극복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비를 위한 것이라지만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는 예산은 20%도 되지 않고, 나머지 대부분은 소비쿠폰 지급, 고용 안정, 소득 보전 등을 위한 현금 살포다. 게다가 정치권에서 2차 재난지원금 지급 얘기가 나오고,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지 모르는 ‘전 국민 고용보험’까지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비대면 강의로 인해 제대로 된 강의를 받지 못했으니 등록금을 돌려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거세지자 정치권에서 세금으로 대학 등록금을 반환해 주자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세금을 통한 대학 등록금 반환은 재원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국민이 낸 세금에는 대학 문턱에도 가 보지 않은 사람들이 낸 세금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세금으로 대학 등록금을 반환해 주는 것은, 대학생보다 더 열악한 처지일 수 있는 사람이 더 나은 처지의 대학생을 지원하게 되는 ‘정의롭지 못함’이 내포돼 있다. 대학 등록금 반환 문제는 대학과 학생들 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정부가 세금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가 재난임은 분명하다. 이 재난을 정부가 적극 노력해서 극복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노력은 코로나 확산을 막는 방역과 치료제 및 백신 개발에 집중돼야 한다. 그리고 민간의 생산 기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원하고 생산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그래서 정부의 재정 투입은 생산 활동의 중단으로 소득이 없어 생계를 위협받는 가계와 운전자금 부족으로 생산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기업들에 집중돼야만 한다. 그뿐만 아니라, 기업활동을 옥죄고 있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민간의 경제활동을 막고 있는 각종 장애물 제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해야 할 일은 제쳐 둔 채 돈 푸는 일에만 열중한다.

우리 정부와는 사뭇 다른 유럽의 4국이 있다. 스웨덴·덴마크·네덜란드·오스트리아다. 이들 국가는 재정을 파탄 낸 남유럽 4국(PIGS)과는 달리 건전재정을 유지해온 ‘재정모범 4국(Frugal 4)’이라 불린다. 이들 나라 총리가 지난 17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코로나 대응 재정 지출도 필요한 곳에 아껴 써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 기고문을 실었다. 그들은 EU 집행위원회가 추진 중인 5000억 유로(약 680조 원) 규모의 ‘긴급회복펀드’는 결국 납세자가 갚아야 하는 돈이라며, 그 펀드를 대출로 전환해 가장 필요한 이들에게 빌려주는 게 가장 건전하게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역설했다. 재정을 허투루 쓰지 말고 가장 심각하게 타격을 받은 곳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돈만 풀어서 해결하려 하는 우리 정부는 이들 총리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지금 정부가 빚을 내서 뿌리는 돈은 결국 우리의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한다.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