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의 지식카페>돔 오르면 내려다보이는 회의장…‘국민이 의회 위에 있다’ 상징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돔을 감싸고 있는 경사로를 걸으며 ‘열린’ 민주국가를 눈과 몸으로 체험한다. Pinnacle List

■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풍경 - (33) 독일 국가의회 의사당

2차대전때 파괴된 뒤 1999년 신축…‘역사의 존중·정치적 투명성’ 등 담아 과거와 현재의 대화 실현
돔 유리 통한 빛으로 내부조명·이산화탄소 배출 줄인 친환경… 韓 의사당은 가짜 돔으로 권위만 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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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있는 국가의회 의사당은 1871년 제정 독일이 탄생하고 나서 1894년에 완성한 제국의회 의사당(Reichstag)을 개축한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도 나라의 공식 명칭이 독일제국(Deutsches Reich)이었고 의회의 명칭도 독일제국의회(Reichstag)였다. 그래서 이 건물을 ‘Reichstagsgebaude(라이히스탁스게보이데, 독일제국국회의사당)’이라고 계속 부르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가 된 다음 달인 1933년 2월에 국가의회 의사당 건물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방화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히틀러는 대부분의 기본 인권과 노동자 권리를 정지시켰다. 나치 시대에는 국회가 거의 열리지 않았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이 국회의사당은 공격 목표가 돼 모두 타버렸으며, 전소한 국회의사당은 전혀 수복되지 않고 있었다. 임시 국회의사당으로 쓰였던 크롤 오페라 극장(Krolloper)도 공습을 받아 전소됐다. 국가의회 의사당 건물은 1945년 영국과 미국군의 공습과 베를린 공방전에서 철저하게 파괴되고 말았다.

그 후 1990년 동·서독이 통일하게 돼 연방의회가 베를린으로 이전하게 됐다. 유리 돔을 가진 지금의 국가의회 의사당은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경이 설계한 것으로 1999년에 완성됐다. 그야말로 국가의회 의사당은 20세기 독일의 모든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이었다.

지금은 유명한 돔이 있는 의사당 건물이 됐지만, 1992년 국제설계경기에서 당선된 포스터의 계획안은 매우 큰 논란을 일으켰다. 당선안은 거대한 지붕이 의사당과 서쪽 광장 전체를 덮고 있었다. 이런 지붕을 가로세로 5개씩 모두 25개의 높이 57m 원기둥이 받치고 있었고, 지붕은 렌즈 모양을 철골로 짠 유리 지붕 16개를 연속해서 만들었다. 심각한 군중집회가 열리던 광장을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공공의 장소로 바꾸고, 광장에서 시작한 공공 공간을 건물 안까지 관통하게 했다. ‘ㅁ’ 자로 둘러싼 건물 안에는 거대한 중정을 뒀고, 의사당 지붕에는 테라스와 레스토랑 등을 둬 적극적으로 열린 의사당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파괴된 돔은 새로 만들지 않은 채 건물의 수평성을 강조했다.

논쟁의 중심은 결국 돔이었다. 독일제국국회의사당은 파울 발로트(Paul Wallot)가 설계한 이탈리아 성기(盛期) 르네상스 양식의 6층 건물로, 중앙에는 정사각형의 벽 위에 놓인 4개의 곡면이 만나서 생긴 거대한 유리 돔이 얹혀 있었다. 이 돔을 통해 들어온 빛은 회의장 전체를 비춰 주었다. 그러나 의사당의 돔은 전쟁과 화재로 사라져 버렸지만, 독일인에게 그 돔은 자취 자체가 쓰라린 역사의 증거였다. 따라서 돔이 없이 새로운 국가의회 의사당을 짓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의사당의 돔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돔은 베를린의 망령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본래 의사당의 정신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의 정당들도 노선이 다른 만큼 돔에 대한 생각도 달랐다. 보수주의자들은 발로트가 설계한 본래의 돔을 그대로 복원해야 한다고 했지만, 녹색당은 이런 돔을 반대했다. 사회민주당은 ‘민주주의의 등대’를 표현한다며 건물 위를 원통으로 만든 안을 지지했다. 자유민주당은 본래의 돔을 똑같이 복원하는 것보다는 비용이 덜 들 것이라며 유일하게 근대적으로 만든 둥근 돔을 지지했는데, 결국은 이 의견이 가장 우세했다.

19세기의 돔은 낮고 위압적이며 개방된 현대사회에는 적합하지 않은 건축 형태였으므로, 건축가 포스터에게는 과거의 돔을 복원한다는 것은 그가 주장하는 모든 건축적 원리에 상반되는 일이었다. 따라서 포스터는 처음부터 돔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포스터는 돔을 원하는 독일 국민과 정치가들의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대공간을 덮개로 덮은 자신의 당선안을 버리고, 같은 공사비에 돔을 얹은 덜 급진적이지만 간결한 새로운 안을 만들어야 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빛을 분산시키고 회의장 내부 열기를 빨아올리는 자연 환기장치가 중심에 있다. 픽사베이

그는 모순이 되는 돔을 받아들이면서도 이것을 역전해 새로운 국가의회 의사당 안을 만들었다. 수정안의 원칙은 네 가지였다. 역사의 이해와 존중, 출입의 자유, 민주주의의 포럼과 투명성, 본격적인 환경보호가 그것이다. 먼저 포스터는 돔에서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이를 ‘쿠폴라(cupola)’라 불렀다. ‘쿠폴라’란 고전건축에서 빛이나 공기를 주려고 건물 위에 놓이는 작고 높은 구조물을 말하는데, 지붕 위에 놓이거나 큰 돔 위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다. 독일 국민에게 돔은 건물의 역사이자 시대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었지만, 건축가는 이 요구를 직접적으로 따르지 않고 돔을 ‘빛이나 공기를 주는 구조물’로 바꿔 해석했다. 또 외관만 남기고 전체를 모두 개조했음에도, 19세기풍의 장식 단편, 건설할 때 석공이 새긴 눈금 자국, 전쟁으로 입은 상흔, 침입한 소련군 병사가 남긴 낙서와 같은 사소한 흔적을 그대로 남기면서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실현했다.

국가의회 의사당에는 방문자가 들어오는 출입구가 따로 있지 않다. 누구라도 국가의회 의사당의 서쪽 입구로 들어온다. 따라서 국회의원과 방문자는 같은 입구를 사용한다. 출입구가 있는 옛 의사당의 고전적인 페디먼트 밑의 엔타블러처에는 독일어로 ‘Dem Deutschen Volke’라고 새겨져 있다. ‘독일 국민에게’라는 뜻이다. 건축가 포스터는 출입구 위에 있는 이 말은 국민과 정치가들이 같은 출입구를 써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당선안에서 제안했던 개방적인 공공 공간은 수정안에서 이렇게 달리 해석돼 나타났다.

이렇게 들어간 방문자는 회의장을 바라보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의 지붕 테라스로 올라온다. 그리고 다시 높이 23m, 폭 40m의 돔으로 올라와, 돔을 지탱하는 구조물이기도 한 유리 벽 옆의 나선형 경사로를 타고 올라가면서 베를린 시가지 풍경을 360도로 바라볼 수 있다. 돔을 감싸고 오르는 경사로는 열린 민주국가를 눈과 몸으로 체험하는 건축적인 표현이다. 이렇게 걸어 올라가면 돔의 바닥에서 16m 위에 있는 전망대에서 베를린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 자리에서 국민은 이 나라의 주인이며 도시와 국가의 한가운데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투명성이란 유리로 투명할 뿐만 아니라 내외부 공간 전체를 시민의 공공 공간으로 만들고 그 안에서 성실한 민주주의 정치가 실현되는 것을 뜻했다. 1층에서 국민은 유리 벽 너머로 회의장을 직접 보면서 들어가도록 했다. 쿠폴라에서 경사로를 타고 올라가는 것은 국민이 회의장에 앉아 있는 국회의원 위를 올라가는 것이며, 쿠폴라를 돌면서 국회의원들이 있는 회의장을 밑으로 내려다보는 것은 국민이 의회 위에 있음을 상징하는 행위다.

돔 안에는 회의장 바로 위를 덮고 있는 또 다른 돔이 있는데, 지붕 레벨에서는 이 작은 돔의 경사면을 통해서도 내려다볼 수 있다. 회의장을 상시 공개함으로써 열린 의회정치를 공간으로 표현하기 위함이다. 국민은 아무 생각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듯이 보이지만, 이로써 국회의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권자가 극장 안의 배우를 보듯이 자기를 보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이것은 나치의 과거를 벗어나 국민이 매일 정치인을 감시한다는 자유 시민을 유감없이 공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이 건축가가 제안한 ‘정치적 투명성’이었다.

독일 국가의회 의사당의 단면도를 보면 건물의 중심부만 보아도 회의장 면적보다 국민에게 할당된 공공 공간의 면적과 볼륨이 훨씬 넓고 크다. 그리고 그 안에는 복잡한 구조 속에 수많은 사람이 그려져 있다. 회의장, 회의장 주변의 발코니, 각 방, 계단과 복도, 그리고 지붕과 거대한 유리 돔, 돔의 경사로 등에는 어김없이 서 있는 사람, 앉아 있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국민과 국회의원들이다.

더욱이 독일의 정치를 대표하는 국가의회 의사당은 환경을 중시하는 독일의 대표적인 지속가능한 건축이기도 하다. 외장 유리는 돌출한 환기창이 되며, 그 안쪽에는 요트의 돛처럼 거대한 12m 높이의 가동 차양이 직사광선을 차단한다. 이것은 태양의 움직임에 맞춰 360도 회전하면서 회의장에 직사광선이 들어가지 않고 항상 밝은 빛으로 가득 차도록 설계된 장치다.

중심에는 ‘빛의 조각’이라 불리는 나팔 모양의 원뿔형 장치가 거꾸로 매달려 회의장을 향해 찌르는 듯이 서 있다. 이 장치에는 반사 유리 365장이 덮여 있으며 무게가 무려 300t이나 된다. 돔의 유리를 통해 들어온 빛이 이 장치에 부딪쳐 분산되고, 그렇게 분산된 빛이 다시 밑에 있는 의사당을 비추도록 했다. 이로써 회의장은 인공조명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이 원뿔형 장치는 사이펀처럼 대기의 압력을 이용해 회의장 내부의 열기를 빨아올려 돔 꼭대기의 지붕으로 배출하는 자연 환기통이다. 이 원뿔형은 낮에는 자연광을 반사해서 회의장으로 빛을 넣어주고, 밤에는 반대로 도시 스카이라인을 향해 희미하게 빛나는 신호등이 돼 나타난다. 또한 이 건물은 공조 열원으로 재생 가능한 정제한 식물성 기름을 연료로 사용하고, 배열로 발전하며 지하 수맥을 축열로 활용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4%나 줄였다.

공공건축물이란 이렇게 국가적 책무와 방향을 솔선해 보여주는 건물이다. 환경을 배려하기는커녕 에너지를 마구 먹고 있는 국회의사당 건물 안에서 지속가능한 환경에 관한 법을 제정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또 국민에게는 국회의사당 건물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심하게 제재하면서, 그 건물 안에서 국민을 떠받드는 진정한 법률을 발의한다고 자랑하는 것도 난센스다. 공간은 제도를 말하고 제도는 공간을 요구하는 법이다.

건축가들이 제안한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은 본래 수평 지붕이었다. 그런데 돔을 올려 권위를 나타내야 하지 않겠는가 해 나중에 ‘가짜 돔’을 올려놓았다.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의 돔 밑에는 공간이 없이 막혀 있다.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권위의 과시뿐이다. 사람은 자기가 사는 집을 닮는다. 그러니 국회의원은 자기가 일하는 국회의사당을 닮게 돼 있다. 독일 국가의회 의사당은 관광의 명소이고 베를린의 랜드마크이며 재생의 상징이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은 무엇의 명소이고 무엇의 랜드마크이며 무엇의 상징인가? 이는 ‘빛의 조각’이 있는 쿠폴라와 ‘가짜 돔’의 차이를 훨씬 뛰어넘는 질문이다.

그런데 독일 국가의회 의사당에 대해 한 가지 의문이 더 남아 있다. 돔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건축가는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유리’ 돔을 만들었다. 입구부터 시작해서 건물의 꼭대기인 돔의 정상까지 국민이 ‘자유로이’ 다닐 수 있게 했고, 국민이 지나가면서 여기저기서 회의장을 내려다보게도 했다.

국회의장과 국회의원은 이 설계안에 어떻게 찬성해 줄 수 있었을까? 이렇게 국가의회 의사당의 건축이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을 공간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건축가가 말했을 때, 그들이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 주장을 받아줬기에 이런 국가의회 의사당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질문하고 상상할수록 우리에게 큰 교훈이 답으로 돌아온다.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 용어설명

국가의회 의사당 화재 사건(Reichstagsbrand)

나치 독일 정권의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핵심 사건으로 1933년 2월 27일에 발생했다. 소방대와 거의 동시에 도착한 경찰은 발가벗고 건물 뒤에 움츠려 숨어 있던 마리뉘스 판데르루베(Marinus van der Lubbe)를 발견했다. 루베는 네덜란드 출신의 공산주의자이자 실직 벽돌공으로 그 당시 최근에 독일로 넘어온 상태였다. 발견 당시 루베는 방화용 도구를 소지하고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이를 비상사태를 선언할 기회로 삼아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에게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의 인권 조항 대부분을 폐지하는 비상사태법령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으며, 대대적인 공산주의자 탄압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