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미래리포트 2020>“‘韓=기후악당’ 비판받는 현실 자성 필요… 글로벌협력 주도해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태용(가운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와 강성진(왼쪽)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김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지난 15일 문화일보 본사에서 열린 ‘기후와 포스트 코로나 긴급진단’ 좌담회에서 “‘그린뉴딜’이 ‘녹색성장’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관 주도에서 벗어나 민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보텀업’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김동훈 기자

[좌담]
정태용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김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사회 = 이관범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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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같은 공중보건위기의 재발을 막고 세계 온실가스 배출 7위 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주도적이고 전향적인 자세로 세계 환경·공중 보건 문제에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내 환경·공중보건·경제정책 분야를 각각 대표하는 전문가 3인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가 전 지구적 위협인 감염병 사태로 인해 기후 위기의 중요성을 공감하는 역설적인 계기를 맞게 됐다며 이처럼 한목소리를 강조했다.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그린뉴딜이 한때의 유행으로 사그라든 녹색성장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대안도 제시했다. 정부 주도의 ‘톱다운(top-down)’ 방식을 버리고 민간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보텀업(bottom-up)’ 방식으로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화일보는 오는 9월 3일 ‘기후와 포스트 코로나(Climate and Post-Coronavirus)’를 주제로 국제 포럼 ‘문화미래리포트(MFR) 2020’을 개최한다. 이번 포럼의 제2세션 ‘기후위기와 그린뉴딜 성장론’의 사회자와 토론자로 각각 참가하는 정태용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와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제1세션 ‘기후 위기와 환경·보건 정책’ 토론자로 참석하는 김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등과 지난 15일 문화일보 편집국 회의실에서 만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해법에 대한 긴급진단 좌담회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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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기후변화로 빙하, 동토 등이 녹으면서 얼어 있던 질병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숲 파괴 여파로 감염병 발생주기가 단축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

△김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이하 김 교수)= 코로나19 사태로 기후변화와 감염병 문제가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사실은 기후변화와 공중 보건을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예전부터 위험성을 계속 경고해 왔다. 인수공통 감염 호흡기질환이 4∼5년 주기로 일어나고 있고, 전염력이 점점 커지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어서, 공중보건에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감염병은 어느 정도 인간이 극복했다는 낙관론이 20년 전까지는 상당히 팽배해 있었지만, 과학이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아가고 있다. 거시적 측면에서 이런 것들을 이해하고 장기적인, 그리고 융합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태용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이하 정 교수) = 2018년쯤 세계보건기구(WHO)가 기후변화와 건강 문제에 대한 특별 리포트를 낸 적이 있다. 제일 과학적으로 많이 인용하는 사례는 말라리아다. 전반적으로 더워지니까 말라리아의 활동영역이 넓어지고, 한반도도 말라리아, 뎅기열 등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들 질병은 아직 (해결) 방법이 없다.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되는 과정을 보면 생태계가 ‘완충지대(buffer zone)’ 역할을 하는데, 점차 파괴되면서 접촉면이 넓어진다. 아시아개발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아시아 도시화율은 50%로 전망된다. 앞으로 아시아에서 훨씬 더 많은 생태계 파괴가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다. 기후변화는 공중 보건 문제를 넘어 국가 안보 문제가 되고 있다. 영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기후 안보’를 제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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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장기적·융합적·종합적 자세로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생태 백신’이 해법으로 얘기되고 있다.

△김 교수 = 학술적으로 정립된 개념은 아닌 것 같고, 위기상황을 보면서 만들어가고 있는 선언적 개념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를 완성하려면 국민 인식과 국가적인 정책 의지가 바뀌고 삶과 정책 차원에서 우선순위 세팅이 바뀌어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이 경제적인 것에만 관심을 쏟는다. 미국 대통령부터 그렇다. 국민의 인식 반영이 정치적으로 나타나는데, 아무리 선도적으로 해도 (선거에서) 득표가 안 되면 폐기당할 수밖에 없다.

△정 교수 = 중요한 국제협약이 3개 있다. 기후변화협약과 생물다양성협약, 사막화방지협약. 우리는 경제에 직접 관련되니 기후변화협약만 얘기해왔다. 우리나라는 평창에서 생물다양성협약 총회를 연 나라인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 이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숲이 왜 파괴되느냐. 숲으로 인한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는 거 아니냐. 개발하면 엄청난 이득을 얻는다고. 숲에 대한 가치평가가 제대로 안 돼 있다. 아마존 숲이 지구의 허파란 얘기는 백날 해봐야 환경운동 하는 사람의 얘기고, 몇백조 달러의 가치가 있는데 파괴하는 거라고 해야 의사결정권자들이 개발할 거냐 놔둘 거냐 고민할 것이다. 그린벨트도 마찬가지다. 서울에 집 지을 땅이 부족한데 왜 그냥 놔두냐 한다. 그린벨트 가치가 인간의 삶과 환경 측면에선 몇 백조 원의 가치인지 몰라서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이다.

인간·동물 공통감염 호흡기질환
주기적 발생하고 전염력 강해져
기후변화, 보건 넘어 안보 문제

美 파리협약 탈퇴 등 협력 붕괴
국제연대로 지구적 문제 해결을

그린뉴딜, 일자리用 단기정책
친환경 등 장기적 고민 안보여
보텀업으로 저변 늘려야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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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이하 강 교수) = 감염되거나 아프거나 병원 가는 것은 사적인 문제다. 환경이나 생태는 브라질이나 아마존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공동의 이익 문제다. 그러다 보니 브라질 입장에서는 자국이 얻는 이득이 커 보이지 않는다. 먹고사는 문제는 눈앞의 사적인 문제고, 기후변화는 장기적이고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국제협약이나 협력을 해야 하는데 부딪치고 있다. 사적인 영역에선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사회 = 국경, 기득권, 이념 등을 뛰어넘어 시민과 기업, 지자체, 정부, 국제사회가 모두 힘을 합치고 협력해 나가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진전이 없다.

△강 교수 = 거버넌스를 크게 보면 국내와 국외가 있다. 외교부가 국제적으로 가지만 실제 결정은 기획재정부와 환경부가 한다. 이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국내 거버넌스의 경우 아무리 위원회를 만들어 뭘 하자고 해도 결국 정부부처끼리, 혹은 청와대가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가게 된다. 국제 분야도 힘이 센 나라가 하겠다고 하면 하겠지만, 미국도 탈퇴한 데다 개도국도 책임지기 싫어한다.

△정 교수 = 기후변화 쪽을 말하자면, 하기 싫으면 만드는 게 위원회다. 위원회에 많이 참여해봤는데 시작해놓고 하고 싶지 않으면 위원회를 만들어 결국 ‘톱다운’으로 결정한다. 좀 더 나아가서 지금 트럼프로 상징되는 21세기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다자주의 쇠퇴를 뜻한다. 세계화의 반작용이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생기면서 글로벌 문제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게 된 상황이다. 이게 다시 ‘글로벌 퍼블릭 굿’으로 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미국만 해도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그린뉴딜을 하려고 한다. 2050년에 배출량을 제로로 하겠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오는 11월 대선에서 민주당이 (대권을) 잡으면 국제 분위기가 확 달라질 것이다. 한국이 세계 온실가스 배출 7위 국가인데, ‘기후 악당’ 소리를 듣고 있는 것에 대해 자성해야 한다. 덴마크가 기후변화문제에서 굉장히 앞서가고 있다. 경제 순위나 배출량이 적고 많음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한 것이지만 ‘녹색동맹’, 이런 것을 만들어서 해야 한다. 지금은 우리가 끌려가는 형태인데, 한국 정도 되면 더 치고 나가서 나를 따르라 할 수 있는 수준은 돼야 한다.

△사회 = 그린뉴딜이 녹색성장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강 교수 = 그린뉴딜은 왜 하는지에 대한 장기적인 고민이 안 보인다. 뉴딜은 단기 정책이다. 그린뉴딜로 결국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녹색성장만 해도 친환경적으로 성장하겠다는 장기 목표가 있었다. 그린뉴딜의 방향 자체는 반대할 게 없지만 감염병 사태가 오면서 너무 성급하게 만든 개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조 단위 적자를 내던 테슬라가 미국에서 계속 사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가 손실을 감수한 채 막대한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민간 섹터에서 준 것이다. 녹색 성장 때는 공감대 형성이 안 됐다. 정부가 민간과 함께 가능한 방향을 정하되, 인센티브 매커니즘이 작동하도록 해야 민간 섹터가 동참할 수 있다.

△정 교수 = 녹색 성장이 실패한 이유는 ‘톱다운’ 방식의 사업 전개로 저변 확산에 실패해서다. 그린뉴딜이 성공하려면 ‘보텀업’을 통해 국민적 동참을 이끌어내야 한다. 또 정부가 돈을 푸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사업 기회를 민간에 제공한다는 발상으로 해야 한다. 정부가 아니라 민간에서 고용을 창출하도록 돕는 방식이어야 한다. 정부 예산만 쏟아붓는 것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정리 = 조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