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박왕자’땐 “우발적” 주장… 이번엔 지휘계통 거쳐 만행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12년 전 금강산에서도… 지난 2008년 북한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총격 피살 사건을 조사한 정부합동조사단이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국방부, 北만행 강력규탄

비무장 민간인 사살 않는 건
戰時에도 지켜야할 국제협약
北조치 없으면 남북관계 급랭

북한이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공무원 A(47) 씨를 해상에서 사살·화장한 것이 확인되면서 지난 2008년 북한이 ‘우발적이었다’고 주장한 ‘박왕자 씨 피격 사건’과는 사건의 성격이나 파장이 다르다.

이번 사건이 북한 상부 지시에 따라 자행된 것으로 확인된 만큼 우리 정부가 북측에 반드시 책임소재를 따져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고조되고 있다.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도 더 악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북측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경지역 접근 인원을 사살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내부기준이며 전시에도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하는 것은 ‘제네바 협약’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다.

24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A 씨는 지난 21일 어업지도선에서 업무를 수행하던 중 월북을 목적으로 해상에 표류하다 22일 북측으로 넘어간 이후 피살됐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군은 지휘라인을 거쳐 A 씨에게 총격을 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발적인 피격이 아니라 의도적인 사살이란 설명이다. 북측은 최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중국과의 국경지대 등에서 ‘1㎞ 이내 접근 시 총격’ 등의 지침을 세우고 있다. 신범철 한국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내부 방침이지 그걸 외국인에게 적용한다는 것은 국제법을 무시한 것”이라며 “마땅히 정부 차원의 항의 및 재발방지 요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08년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금강산 관광객 고 박왕자 씨 피격 사건보다 훨씬 심각한 사안으로 여겨진다. 당시 통일부 발표에 따르면, 북측은 박 씨가 철조망을 넘어와 초병이 수차례 정지 명령을 내렸는데 도망갔고, 경고사격을 한 뒤 발포했다며 우발적이었음을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는 피격 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에 대해 전면 중단을 선언했고 이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대북제재가 본격화됐다.

민간인 피살로 인해 북한에 대한 여론이 비판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 정부의 대북 지원 등 각종 접촉 사업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최근 남측과의 접촉을 차단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대북 접촉라인을 갖고 있는 박지원 국정원장 임명을 통해 북한과의 비공식 접촉을 타진했다.

북한의 민간인 피격 사건에도 정부는 마땅한 대책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6월 북한은 남북 간 공식적인 대화 채널을 모두 차단해 불리한 사건에 대해서는 접촉을 꺼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해양경찰은 북측 해역에서 총에 맞아 숨진 공무원이 탑승했던 어업지도선을 인천 옹진군 연평도 해상에서 조사하기로 했다.

정철순·김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