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방역 독재’로는 코로나 못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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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특임교수

개천절 집회 막은 살벌한 풍경
시민 자율 빛났던 K-방역 먹칠
康외교 남편은 방역 僞善 상징

통제와 감시에서 자발성 유도
격리 방식 바꾸고 사생활 배려
창의적 민주적 방역 추구해야

정부가 개천절 집회를 막기 위해 지난 3일 300대 이상의 경찰차와 1만2000여 명의 경찰을 동원해 광화문 일대를 철통같이 에워싼 모습이 2008년의 ‘명박산성’과 흡사해 ‘재인산성’이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더구나 지하철역을 폐쇄하고, 오가는 시민들을 검문하는 등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심대하게 침해한 ‘방역 독재’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것이 2020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이라는 외신 보도를 보니 창피하기 그지없다.

공권력을 동원해 시민의 이동을 원천적으로 막는 바람에, 시민사회의 자율적 참여를 통해 ‘K-방역’에 성공했다는 정부의 자랑을 스스로 부정해 버렸다. 정부가 ‘재인산성’을 쌓아 정치적 억압과 통제를 통해 코로나 방역을 한다면 중국 공산정권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런 과잉 통제는 ‘우파는 틀렸고, 좌파는 옳다’는 집권 세력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 매우 우려스럽다.

그동안 집권 세력은 운동권 사고에서 우파를 공존이 아니라 타도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원주의적 사고 아래 견해의 차이를 인정해야 하는데, 집권 세력은 오직 자기들만이 옳다는 생각에서 우파를 ‘적폐(積弊)’로 몰아붙이고 있다. 걸핏하면 우파가 발목 잡아서 개혁이 안 되고, 과거 우파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국정이 어렵다고 강변한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는, 전·현직 법무부 장관의 가족과 아들의 비리를 포함한 국정 난맥상을 광화문광장에서 비판하려는 우파 세력을 코로나 방역을 내세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탄압한다.

지난 추석 연휴에 또 다른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외교부의 특별여행주의보(여행 취소나 연기 권고)에도 불구하고 주무장관의 남편이 이를 무시하고 미국으로 떠난 사건은 정부의 ‘K-방역’ 체제가 허상임을 말해 준다. 장관이 배우자를 설득하지 못하는데, 어찌 국민에게 ‘K-방역’ 가이드라인을 따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미 국민은 정부의 추석 고향 방문 자제 캠페인을 보고 정부의 방역 정책에 대해 심각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관광지는 괜찮고, 고향 가는 것은 안 된다’니 이런 이중잣대가 어디 있나? 관광지는 모두 청정지역이고. 고향은 온통 코로나 창궐지역이란 말인가?

이제 정부는 기존의 ‘K-방역’ 체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큰일 난다, 격리하지 않으면 가족과 이웃들이 모두 감염된다’는 식으로 겁주기와 공포 분위기 조성만으론 ‘K-방역’의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인해 국민의 피로감과 불만이 날로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위기 극복은 장기전이고, 또 정치·경제·사회적 고통을 종합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만큼 초기의 방역 성공에 계속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

코로나 초기 단계에서는 강제 검사나 완전 격리가 불가피했지만,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는 현실에서는 방역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 예컨대, 양성 판정을 받은 후 가족이나 접촉자와 함께 2주간 강제 격리됐으나 아무런 증상도 못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검사 자체를 불신하고 2주 강제 격리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한다. 사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체내에 죽은 바이러스의 찌꺼기가 남아 있더라도 양성 반응이 나온다고 한다. 이 경우 감염 위험이 없는데도 본인과 접촉자들이 짜증스러운 2주간의 사회적 격리라는 고통을 겪고, 또 거주지와 동선이 노출돼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하는 것은 물론 주위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정부 주도의 통제와 감시 위주의 코로나 방역 체제를, 시민의 진정한 자발과 책임에 기반을 둔 방역 체제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특히, 방역 당국이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야 한다. 지난 일요일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돌봄 취약 관련 현장 간담회에서 “사회적 단절을 극복할 수 있는 장기적인 방안을 마련해 달라”는 참석자의 요청에 긍정적으로 화답한 것은 좋은 출발이다. 정부는 현행 방역 체제가 무오류라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정부가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코로나 방역 정책을 개발할 때다. 우파의 집회를 중단시키면 코로나를 잡을 수 있다는 단순 논리에서 벗어나야 ‘K-방역’이 성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