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환 산업부 차장
국정감사가 끝났다. 매번 국감 말미에는 증인들에 대한 논쟁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된다. 21대 국회에서도 이런 모습은 여전했다. 올해는 백복인 KT&G 대표가 논란이 됐다. 전북 익산시를 지역구로 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수흥(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백 대표를 익산시 장점 마을 사태와 관련해 기재위 증인 신청을 하면서 논란이 됐다. 장점 마을 사태는 100여 명이 살던 이 마을에 2001년 비료공장이 들어선 이후, 주민 수십 명이 암에 걸려 사망한 사건이다. 비료 제조 원료인 담배 찌꺼기(연초박)를 이 공장 업체가 불법 사용하면서 나온 유해물질이 문제가 됐다. 연초박은 KT&G가 적법하게 납품한 원료였는데, 담배사업법을 관장하는 기획재정부가 기재위 소관이니 백 대표를 불러 따져야 한다는 게 김 의원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불법을 저지른 업체를 감독하지 못한 전북도와 익산시에 책임이 있다고 이미 감사원의 최종 감사까지 종결 처리된 사안이었다. 주민 소송을 대리한 민변은 이를 근거로 익산시와 전북도에 100억 원이 넘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심지어 기재위 피감기관장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해당 업체의 불법을 지목하며 “만약 폐기물관리법상 관리 감독 책임이 있다면 익산시와 전북도가 책임 주체”라고 밝혔다.
객관적으로 KT&G에 책임을 묻기 어려운 데다, 기재위에서 다룰 사안도 아닌 것을 김 의원은 계속 물고 늘어졌다. 그러면서 정작 사태 책임이 있는 익산시는 부르지도 않았다. 장점 마을 사태와 아무 관련 없는 한국수출입은행 국정감사에서도 김 의원은 “환경 피해를 본 장점 마을이 우리나라 대표적 의료·바이오 메카로 성장하도록 정부에 건의해 달라”는 엉뚱한 요청을 하기도 했다.
결국 백 대표의 기재위 증인 출석은 여야의 논쟁 끝에 불발됐다. 장점 마을 사태는 많은 주민이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철저한 책임 규명과 그에 맞는 보상이 있어야 함은 마땅하다. 그러나 사안과 큰 관련이 없는 민간기업을 상대로 지역 민원을 해결하려 국정감사를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빅데이터 분석 기업인 폴메트릭스가 지난 20대 국회 국정감사에 채택된 일반 증인 및 참고인을 전수조사한 결과, 증인·참고인 출석을 요구했다가 철회한 177명 중 기업인이 77명에 달했다. 철회율이 12.4%로, 비기업인(8.1%)보다 월등히 높아 ‘위협용’ 아니었냐는 해석이 나왔다. 2017년 국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건설사 대표들을 불러놓고 사회공헌재단에 기부금을 내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2018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대기업 경영자들에게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내라고 독촉하기도 했다. 2016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국감장에 불려 나온 민간 기업 임원들이 아무 질문도 받지 않은 채 온종일 대기만 하다 돌아간 일도 있다. 기업인들을 대하는 국회의 태도가 이렇다.
국정감사는 1년간 벌어진 각종 국가적 현안에 대해 잘잘못을 가려내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당연히 관련자들을 불러 내 질의도 하고 질타도 해야 한다. 국정감사를 지역 민원을 해결하려는 도구로 이용하거나, 관련 없는 민간기업이나 피감 기관을 불러내 호통치고 윽박지르는 무대로 생각하면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