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ep Question - AI와 지적경쟁은 가능한가 >美·英 주요대학 ‘AI 조교’ 도입…국내선 ‘수포자 막는 인공지능’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 조지아공대 컴퓨터과학부의 아쇼크 고엘(Ashok Goel·가운데) 교수가 문제 해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질 왓슨’ 등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더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 캡처

■ 교육과정 속 AI 활용

학생들에게 정보·조언 등 전달
수준별 ‘개별적 교육코스’ 제공
교수 업무 줄고 교육의 質 향상

교육부 ‘초등수학 플랫폼’ 보급
내년엔 영어쌤·국어쌤도 등장
공교육 AI 교육환경 구축 절실

인공지능(AI)은 미국, 영국 등 주요국 교육 과정에 빠르게 적용되며 교육 향상을 이끌어내고 있다. AI 조교에게 행정업무를 맡기고 교수는 강의에 집중하고, AI를 통해 학생에게 개별화된 교육 과정을 제시해 학업 향상을 돕는 게 대표적 사례다. 이 같은 AI를 통한 ‘교육혁명’은 시간이 지날수록 교육의 내용, 접근 방식 등의 ‘교육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1일 교육계에 따르면, 미국 조지아공대는 지난 2016년부터 컴퓨터과학 수업에서 AI 조교를 활용하고 있다. AI 조교는 한 학기 동안 1만 개 이상의 학생 질문에 답하고 시험 기간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미국 IBM사의 AI인 왓슨을 기반으로 설계된 AI 조교의 언어 능력이 뛰어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조교가 AI인지, 전 학기 강의를 도왔던 조교인지 한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AI가 행정 업무를 맡으면 교수와 조교는 학생 교육에 더욱 신경을 쓸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는 장점이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SU)는 AI를 적극 활용하는 대학교로 손꼽힌다. ASU는 대학 신입생 과정인 대수학(algebra) 과목에서 AI 기반의 ‘ALEKS’(Assessment and Learning in Knowledge Spaces)를 도입했다. ALEKS는 학생들의 수학 학습 능력을 평가하고, 각각에 맞는 개별화된 코스를 제공한다. 2016년 이 시스템 도입 이후, 기초 수학 역량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의 성적이 평균 28% 향상됐다고 한다. 또 생물학에도 AI 기반의 ‘적응학습’을 2015년에 도입, 봄학기 20%였던 탈락률이 1.5% 줄었고, C 학점 미만의 비율이 28%에서 6%로 감소했다. 미시경제학에도 2017년 적응학습을 도입한 결과, 첫 시험에서 C 학점 미만 학생 비율이 38%에서 11%로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도 AI를 교육에 적극 도입하고 있다. 볼턴대는 IBM 인공지능 왓슨을 사용, 1만1000명 이상 학생들에게 정보, 조언, 안내 요청을 전달하는 가상 비서 ‘에이다(Ada)’를 개발해 운영 중이다. 에이다는 다양한 정보기술(IT) 시스템에 등록된 학생과 커리큘럼 콘텐츠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에 더해 일반 대학에서 문의한 2500개 이상의 질문에 응답할 수 있다. 교직원들은 관리 업무와 정규시간 이외에 소요되는 많은 시간을 절약하고, 학생은 양질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영국 스태퍼드셔대는 지난 1월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자인 ANS사와 공동으로 AI를 활용한 교육 도구이자 디지털 비서인 ‘비컨’을 출시했다. 학생에게 AI가 상담을 해주거나 성적도 분석해주는 식으로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 학생들이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에 비컨 앱을 설치하면 해당 프로그램은 24시간 내내 학생들의 질의에 응답해준다. 또 비컨은 시간표 관련 질문에 답하거나 학생들에게 동아리 참여를 제안하기도 한다. 네스타혁신연구소의 토비 베이커는 영국 교육현장의 AI 사용 연구를 통해 “AI 사용으로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교육서비스 질이 향상되고 교수들의 업무 부담도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AI를 교육에 적용하려 노력하고 있다. 서울대, 카이스트, 연세대, 한양대 등의 대학들은 AI 챗봇, 가상현실(VR) 실험실, 스마트 강의실 도입 등 스마트 캠퍼스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지식과 융합 역량을 갖춘 연구자를 양성하기 위해 카이스트와 고려대, 성균관대, 포항공대, 광주과기원을 국내 첫 AI 대학원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초등 저학년 단계에서의 ‘수포자’ 양산을 막기 위해 AI로 수학 기초학력을 진단하는 프로그램도 일선 학교에 보급했다. 지난 9월 개통한 ‘똑똑! 수학탐험대’는 초등 1·2학년이 게임과 결합한 수학 플랫폼에서 학습하면 그 결과를 AI가 분석·예측해 학생의 수준에 맞는 학습 콘텐츠와 조언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학교 정규 교육활동에 AI 기술을 도입한 첫 사례다. 학생들은 ‘롤플레잉게임’(RPG)을 하듯 문제를 풀면서 보석과 동물 카드를 획득하고 전 세계의 멸종 위기 동물을 구하는 미션을 한다. 학생들이 학습을 진행하면 프로그램이 학습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수 세기’ ‘연산’ 등 각각의 영역에 대해 보충이 필요한지를 교사에게 알려 준다. 내년 3월에는 ‘AI 영어쌤’, 9월에는 ‘AI 국어쌤’도 등장한다.

다만, 우리나라 교육에 AI를 본격 적용하기 위해서는 AI 교육 환경부터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제영 이화여대 미래교육연구소장(교육학과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AI 교육 환경은 열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PISA 2018’을 보면, 학교에서 학습을 위해 학생이 디지털기기를 활용하는 정도는 37개국 중 29위다. 정 교수는 “민간교육업체의 디지털 교육 인프라가 공교육에 비해 상당히 앞서가고 있어 디지털 격차가 교육격차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