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기업과 일자리 내칠 파괴적 상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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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9일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공정경제 3법’ 중 상법 개정안은 상장회사가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고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쳐 3%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사외이사인 감사를 선임할 때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에게 각각 3% 의결권을 허용했다. 그리고 모(母)회사 주주들이 자(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도’도 신설됐다.

이제 우려가 현실이 됐다. 감사위원은 회사의 온갖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이렇게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면 대주주가 원하는 사람이 아닌 외부 인사가 감사로 선임될 가능성이 크다. 그 외부 인사에는 국민연금이나 경쟁사, 또는 투기자본의 대리인이 포함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을 통제 감시할 수 있으며, 경쟁사는 자신의 대리인을 통해 모험투자나 사업 구조조정 등 회사의 중요한 내부 정보를 빼 갈 수 있다. 투기자본 역시 자신의 대리인을 통해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보다는 단기적인 이익배당을 요구하는 등의 행태를 보일 수 있다. 이번 상법 개정으로 기업의 경영권이 여러모로 심각하게 위협받게 됐다.

재계는 물론 학계와 법조계의 극력 반대에도 더불어민주당이 기어이 상업개정안 처리를 강행한 것은, 감사 선출에 대한 대주주의 영향력을 제한해 기업의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기업의 민주화라는 이념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의사결정은 본질적으로 중앙집권적이어야 한다. 최대주주가 사실상의 주인이 돼 기업 내의 자원을 지시하고 명령해야 한다. 그러잖으면 기업은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기업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면 신속한 의사결정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사를 조정하는 비용이 매우 많아져 경영이 어려워지고 최악의 경우 망할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 가운데서 가장 성공한 삼성과, 민주적으로 경영해 망한 기아자동차가 이를 증명한다. 삼성이 오늘날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 된 것은, 반도체에 대한 이병철 회장의 과감한 투자 결정과 이건희 회장의 독단적 결정에 따른 신경영이라는 충격 요법 덕분이다. 그 과정은 결코 민주적이지 않았다. 반면, 오너가 없는 상태에서 전문 경영인 김선홍 회장과 노조가 공동 경영했던 기아차는 파산했다. 이를 인수해 현재의 글로벌 기아차로 성장시킨 것은 현대차 정몽구 회장의 독단적 경영이다.

이번 상법 개악(改惡)으로 인해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에 쓸 수 있는 많은 자원을 경영권 방어에 쓰거나 해외로 탈출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국내보다는 해외에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자리가 줄어 고용이 위축되고 경제 성장이 둔해질 것이다.

이번 개정 상법의 가장 큰 문제는 기업이 더욱 더 정부에 예속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그러잖아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용해 정부가 기업 경영에 간섭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정부가 국민연금의 대리인을 감사위원으로 선임해 기업을 더 쉽게 통제할 수 있게 됐다. 기업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음은 불문가지다. 민간기업의 자유로운 운영 범위가 크게 좁아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만큼 파괴적인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