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윤석열의 劍과 ‘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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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전임기자

이순신의 행적을 그린 김훈의 ‘칼의 노래’를 십수 년 만에 펼쳐 읽었다. 윤석열 징계 몰이에 앞장선 검찰 핵심 인사에 대해 ‘이순신을 모함한 원균’에 비유한 말이 나돌 때였다. ‘…나(이순신)는 임금(선조)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64쪽)….’ 장군은 전란의 최전선에서 왜적과 싸우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음해하는 군왕세력과도 싸워야 했다. 그때마다 장군은 검명(劍銘)을 읽는다.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一揮掃蕩 血染山河).’

타락한 권력에 견제받고 탄압당한 장군의 모습은 오늘날 윤석열 검찰총장의 처지와 중첩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라는 집권세력의 오랜 정적(政敵) 숙청과 정쟁으로 두 동강 났고, 그때나 지금이나 무능한 군주라 할지라도 반대자에게는 무자비했다. 장군의 칼도, 윤검의 칼도, 권력자에게는 양날의 칼이었다. 장군이 거악(巨惡)에 맞서 명예를 지키고자 했듯, 윤검도 검찰의 본분을 지키고자 했다. 장군이 전쟁터에서의 죽음을 자연사로 여겼던 것처럼, 윤검도 정명(正名)의 길을 운명처럼 여기는 듯하다.

둘 사이의 400년 시공을 뛰어넘는 유비(類比)는 희한할 정도다. 윤검은 지난달 말 검찰총장 직무정지 조치를 당했다가 지난 1일 서울행정법원의 ‘검찰 중립성 몰각(沒却)’ 결정에 따라 총장직에 복귀했다. ‘칼의 노래’ 속 장군도 원균의 모함으로 압송됐다가 정유년(1597년) 4월 초하루 의금부에서 풀려났다. ‘칼의 노래’는 장군의 심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내가 받은 문초(심문)의 내용은 무의미했다. 그들은 사실에 입각해 있지 않았다(14쪽).’ 마치 임금의 충견들이 헛것을 짜 맞춰 충(忠)과 의(義)의 구조물을 만들어가듯, 지금 대통령의 사냥개들도 그러는 중이다.

윤검의 죄는 장군의 그것처럼 ‘조정을 능멸한 죄, 조정의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22쪽)’였다. 임금이 ‘강한 신하의 힘으로 다른 강한 신하들을 죽여온(51쪽)’ 것처럼, 대통령도 여권 내 대리인들을 앞세워 반대자들을 탄압했다. 그건 마치 ‘누군가를 끊임없이 죽임으로써 권력의 작동을 확인하려는(43쪽)’ 것으로 보인다. 권력은 늘 칼잡이를 필요로 하지만 한편으론 칼잡이가 두려웠을 터다. ‘칼의 노래’는 ‘사직(社稷)의 제단은 날마다 피에 젖었다(66쪽)’고 당시 권력의 무도함을 그렸다. 오늘날 국정 운영의 비판자들이 하나씩 제거되면서 친문(친문재인) 천하가 구축되는 과정은 선조의 통치술에 대한 오마주일지 모른다.

하지만 장군은 임금의 칼에 죽기를 거부했다. 윤검도 그렇다. 그건 무의미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윤검 측은 또다시 내려진 정직 징계처분에 대한 집행정지를 법원에 신청하면서 “대통령에 대한 소송이 맞는다”고 했다. 윤검은 ‘물러설 자리는 넓지만, 물러서서 살 자리는 없다(91쪽)’고 깨닫고, ‘죽음은 내가 수락하지 않는 방식으로는 오지 않는다(263쪽)’고 믿으며, ‘삶은 늘 죽음을 거스르고 죽음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209쪽)’고 각오한다. 이윽고 윤검은 거악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길을 나섰다. 장군이 마지막 싸움터 노량바다로 떠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