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차원” 이라면서…‘120兆 프로젝트’를 실무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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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명단 등 구체계획 포함
‘집행’을 염두에 둔 단계 정황
60년간 연간 2조원 비용 들어
“부처 자체적 아이디어였다면
실무자들은 파일을 왜 지웠나”

산업통상자원부가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문건과 관련해 ‘아이디어 차원 검토’라고 해명했지만 삭제 파일 중에는 2개 버전의 ‘북한 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파일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관련 업무경험자 명단’ 등 구체적인 계획착수 정황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확대되고 있다. 단순 아이디어 차원의 검토를 넘어 ‘집행’을 염두에 둔 계획 단계란 정황에 무게가 실린다.

1일 감사원과 산업부 등에 대한 취재를 종합하면 2019년 12월 2일 산업부 공무원이 삭제(추정)한 ‘북한 원전’ 관련 파일 중에는 이 같은 파일과 더불어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단계적 협력 과제’와 ‘에너지분야 남북경협 전문가 리스트’ 등 구체적인 계획에 착수한 정황이 다수 발견됐다. 북한과 직접 접촉한 KEDO 업무 담당자들과 해당 분야 전문가들과 접촉하려 했던 만큼 소수 공무원의 아이디어 차원 문건이란 산업부의 해명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산업부 공무원들이 KEDO 관련 경험 전문가들과 접촉하려 했던 것은 원전 건설 부지 확보 차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는 원전 부지 건설지를 크게 3곳으로 압축했는데, KEDO 경수로를 지으려던 함경남도 신포시 금호지구와 비무장지대(DMZ), 신한울 3·4호기 완공지인 경북 울진 지역이다.

산업부는 전날 북한 원전 지원 문건에 대해 해명하면서도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해당 파일들을 삭제한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아 불신을 자초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당 파일 중 상당수가 “박근혜 정부부터 검토한 내부자료”라고 주장했지만, 산업부가 공식 브리핑을 통해 이를 부인하자 “(해당 발언은) 추론이었다”고 한발 물러섰다.

원전 학계에서는 원전을 북한에 지어준다는 것은 사실상 북한을 위한 현금 지원과 다름없기 때문에 이 같은 구상이 단순히 부처 실무자급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이번 정부가 탈원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상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의 요청에 따라 정부가 검토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1400㎿짜리 원전 2기만 지어줘도 단가(㎾당 110원)나 이용률(85%) 등을 고려할 때 연간 2조 원 넘게, 원전 수명(60년)으로 따지면 120조 원 넘게 북한에 사실상 현금을 지원하는 것과 같다”며 “정부 주장대로 상부 지시가 아닌 부처 자체적인 아이디어였다면 실무자들이 파일을 왜 지웠겠느냐”고 반문했다. 정 교수는 “LNG나 석유는 비싸고,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도 심각한 전력난을 고려할 때 현실성이 떨어지며 석탄의 경우 북한 수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 이를 북한 내 전력생산에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원전이 최적의 대안이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여야는 산업부의 북한 원전 지원 문건 의혹을 두고 공방을 이어갔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더 깊은 혼란이 오기 전에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원전 건설 지시 경위를 비롯한 ‘미스터리 문건’ 진행의 실체를 알려 결자해지를 해달라”고 밝혔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선거 때만 되면 북풍 공작을 기획하는 보수야당의 고질병이 도졌다”며 “이런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무너트리는 망국적 매카시즘”이라고 반박했다.

정철순·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