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주방 오물분쇄기, 근본대책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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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헌 한국생명환경자원연구원장 前 건국대 교수

코로나19로 불편한 일상이 계속되면서 많은 국민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식생활과 연관된 주방용 오물분쇄기로 인해 심각한 환경 문제가 사회 여기저기서 불거지고 있어 국민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사회적 대각성과 함께 새로운 행동계획이 절실하다.

지난 4일 ‘주방용 오물분쇄기,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국회와 환경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여기에서 주방용 오물분쇄기로 인한 하수도 오염 문제를 더 방치할 수 없다는 공론이 도출됐다.

요즘 TV홈쇼핑, 인터넷쇼핑몰 등에서 주방용 오물분쇄기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영향으로 최근 2년간 판매량이 전체 누적 판매량의 약 78%를 차지할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음식물 찌꺼기를 직접 외부로 배출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정의 편리함과 반대로 하수도 부담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주방용 오물분쇄기로 인한 하수관로 막힘·역류·악취 등의 문제는 꾸준히 늘고 있으며, 하수처리장 오염 부하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합류식 하수관로의 경우 비가 오면 음식물 찌꺼기가 하천으로 직접 유출돼 오염원이 되고 있다. 이 밖에도 주방용 오물분쇄기는 구조적으로 물 사용을 늘리고, 정부가 오랫동안 추진해온 음식물 자원화 정책과도 상충하는 문제가 있다.

주방용 오물분쇄기는 그동안 여러 제도적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지난 1995년 하수도에 주는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해 주방용 오물분쇄기 판매와 사용이 금지됐다. 그러나 2012년 규제 완화 차원에서 일반 가정용에 한해 인증제품을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당시에도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음식물 찌꺼기(고형물) 무게 기준으로 80% 이상 회수되거나 20% 미만을 하수도에 배출하는 제품을 인증제품으로 한다는 조건에서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하지만 시중에서 판매되는 상당수의 제품이 음식물 찌꺼기를 100% 하수도로 배출하는 불법 개조·변조 제품으로 추정되면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주방용 오물분쇄기로 인한 수질오염과 각종 민원을 우려하는 국회와 언론 그리고 시민사회에서는 꾸준히 판매 금지와 불법 제품에 대한 처벌 강화를 요구해 왔다. 일각에서는 일부 국가 사례를 들며 주방용 오물분쇄기의 판매와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 하수도 배출을 원천 금지하고 있고, 일본은 배출수 수질 기준을 만족할 때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결국, 주방용 오물분쇄기는 각국이 하수 처리 상황에 맞춰 결정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하수처리장 설계 시 음식물 유입을 고려하지 않았다. 따라서 계속 허용하는 경우, 하수관로에 퇴적된 음식물 찌꺼기로 인해 도심 악취는 심해지고 하수처리장 개선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게 된다. 이는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다.

정부는 주저하지 말고 주방용 오물분쇄기 판매와 사용에 대한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도 잠시의 편리함 때문에 환경오염에 눈감고 이웃들에게 고통을 주는 선택과 행동을 멈춰야 한다. 물을 되살리고 미래 세대의 웃음을 찾아주는 국민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