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원감곡역’ vs ‘감곡장호원역’… 철도역명 놓고 등돌린 이웃사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중부내륙철도 가칭 ‘112역’의 이름을 장호원감곡역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하는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 주민들이 지난달 25일 대전 국가철도공단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천시청 제공

전국 곳곳서 “驛이름 양보 못한다” 갈등

국토부 ‘감곡장호원역’ 결정에
이천시 주민들 반발 감사 청구
지정 취소 요구 소송도 검토
음성군 국회의원 여당 소속에
‘정치적 판단 한것’의혹 제기도

서울 경전철·대구 2호선 등도
구청·지역 주민간 극한 대립

철도 역명을 둘러싼 지역 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막대한 지역 홍보 효과 때문에 마을 지명의 역명 반영 여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면서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정치권까지 가세해 다툼을 벌이는데, 때론 소송까지 벌어지면서 과거 사이좋던 마을끼리 서로 등을 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16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경기 이천시 주민으로 구성된 장호원철도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5일 중부내륙철도 노선 중 이천시와 충북 음성군 접경 부근에 설치될 예정인 가칭 ‘112역’의 이름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국토교통부 역명심의위원회가 심의절차를 위반했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 국토부가 지난달 29일 112역 명칭을 ‘감곡장호원역’으로 정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그간 이천시는 해당 역명을 ‘장호원감곡역’으로, 음성군은 ‘감곡장호원역’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왔다. 주민들은 이르면 다음 달 초 감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역명심의위를 상대로 역명 지정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이천시와 장호원읍 주민들은 2005년 철도 기본설계 이후로 이웃인 음성군 감곡면 주민들과 역사 입지를 둘러싸고 갈등이 야기되자 역사는 감곡면 쪽에 짓기로 양보하고 역사 명칭을 장호원감곡으로 하자고 제안해 한국철도시설공단과 합의한 바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역사는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212의 2에 건축되고 있다. 하지만, 충북지역 정치권을 중심으로 역명을 감곡장호원으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올해 5월 20일 열린 역명심의위에서 음성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천시가 지역구인 송석준 국회의원이 국민의힘 소속이고, 음성군은 임호선(증평·음성·진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점을 들어 정부가 정치적인 판단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역명 논쟁은 지하철이나 경전철 역명 선정 과정에서도 치열하다. 서울에서는 신림선 경전철 내년 상반기 개통을 앞두고 고시촌 앞에 위치할 예정인 ‘110번역’ 역명을 놓고 관악구청과 주민들 간 이견을 보이고 있다. 관악구청은 역명을 ‘서울대벤처타운역’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고시타운역’으로 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관악구 주민으로 구성된 올바른역명추진위원회는 자체적으로 역명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고시타운역을 선호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 1839명 중 660명(36%)으로, 서울대벤처타운역을 선호한 이(330명·18%)보다 두 배로 많았다고 밝혔다.

대구에서는 도시철도 2호선 ‘강창역’의 명칭 변경을 놓고 주민 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애초 계명대병원을 가려면 강창역에 내려야 하는데, 인근인 계명대역으로 내리는 경우가 잦아 역명을 ‘계대병원(강창)역’으로 변경이 추진돼 왔지만, 강창역 인근의 파호동과 호산동 일부 주민이 ‘강창(계대병원)역’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울산에서는 북구가 울산∼포항 복선전철화 사업에 따라 지역 내에 신설되는 역명을 ‘북울산박상진역’으로 정해 달라고 건의했으나, 국토부 역명심의위에서 부결된 바 있다. 이에 따라 북구는 주민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았던 ‘북울산역’을 새 의견으로 제출할 예정이다.

이처럼 지역마다 역명을 둘러싼 갈등이 있는 이유는 역명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막대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어서다. 국토부 지침상 역명은 행정구역 명칭이나 역에서 인접한 대표적 공공기관·시설, 국민이 인지하기 쉬운 대표 명소로 정하게 돼 있지만, 홍보를 위해 대학교나 기업 등이 역명 변경을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에 서울교통공사는 이를 수익 창출에 활용하기 위해 기관이나 회사로부터 신청을 받아 1∼8호선 지하철역 역명에 기관·회사명을 3년간 함께 기재해주고 돈을 받는 수익사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역명은 국토부 고시인 ‘철도 노선 및 역명 관리지침’에 따라 철도 운영자가 역명 제정을 위해 지자체 등의 의견을 조회해 국토부에 제출하면 정해진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 주민 의견수렴인데, 의견수렴의 방법은 물론 수렴된 의견의 대표성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어 역명 선정 과정에서 주민이나 기관 간 반발과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천 = 박성훈 기자 psh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