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Window >性의 성벽, 호칭을 허물다… 美·유럽서 ‘性 중립 언어’ 사용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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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트한자, ‘신사·숙녀’ 대신에 ‘승객’
포드, ‘체어맨’ 없애고 중립 직함 ‘체어’
문법까지 바꿔 ‘글쓰기 남녀평등’ 논의
佛·獨 등선 모국어 파괴 우려에 반발도

“친애하는 승객 여러분(Dear guests).”

앞으로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의 비행기에 탑승하면 기내 안내방송에서 “신사 숙녀 여러분(Ladies and gentlemen)” 대신 이 같은 인사말을 듣게 된다. 아예 승객을 지칭하지 않고 “좋은 아침입니다(Good morning)” 또는 “탑승을 환영합니다(Welcome on board)” 등의 표현이 사용될 수도 있다. 이는 루프트한자가 ‘성 중립’ 표현 정책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성 중립’ 표현 정책에 참여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명사에 성별 구분이 있는 프랑스와 독일 등에서는 성 중립 철자법에 대한 논의로까지 확대되면서 언어 자체도 바뀌고 있다.

◇성 중립 언어 사용이 바꾸는 ‘말의 풍경들’ = 최근 성 중립 표현은 생물학적인 남성과 여성 외에도 성전환한 남성 또는 여성, 자신의 성 정체성을 지정하지 않는 ‘논바이너리(non-binary)’ 등 다양한 성 소수자를 존중하기 위한 언어다. 유럽의회(EP)는 2018년 발간한 ‘성 중립 언어’ 안내서에서 성 중립 언어를 쓰는 목적에 대해 “성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인식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편견과 차별로 이어질 수 있는 단어 선택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루프트한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업과 단체들이 최근 이 같은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7월 12일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는 회장직을 뜻하는 체어맨(Chairman) 명칭을 성 중립적 표현인 체어(Chair)로 바꾸기 위해 회사 내규를 개정했다. 포드는 “포용적이고 평등한 문화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저비용항공사 이지젯과 캐나다 최대 항공사 에어캐나다 역시 “신사 숙녀 여러분”이라는 표현 대신 “좋은 아침(또는 저녁)입니다”를 사용하고 있다.

지난 5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는 신입생을 의미하는 ‘프레시맨(freshman)’과 상급생을 뜻하는 ‘어퍼클래스멘(upperclassmen)’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들 단어가 남성 중심적이고 성별 이분법적 의미를 담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해당 용어들은 ‘1학년(first-year)’ ‘상급(upper division)’으로 교체됐다. 6월엔 미국 연방항공국(FAA) 무인기(드론) 자문위원회가 FAA에 남성(man)의 의미가 담긴 ‘비행사(airman)’ ‘유인 항공(manned aviation)’ 등 용어를 성 중립 표현으로 대체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보다 앞서 유럽연합(EU)과 유엔은 성별을 구분치 않는 언어 사용에 대한 지침을 발표한 바 있는데, 여기에는 “성별로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남녀에 대한 언급 없이 일반적으로 사람을 고려하는 언어를 쓸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알렉산드라 셸레 독일 빌레펠트대 사회경제학 연구원은 현지 언론 도이체벨레에 “성 중립 언어 사용은 상징적 차원에서 효과가 있다”면서 “남녀라는 이분법을 넘어 자신을 식별하고 기존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난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법까지 바꾸나?… 반대 여론도 상당 = 프랑스와 독일 등 라틴어에 기반, 명사에 남성·여성·중성 등 성별 구분이 있는 나라들에서는 성 중립 철자법인 이른바 ‘포괄적 맞춤법’에 대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문법과 철자법을 바꿔 글쓰기에서 남녀평등을 이루자는 취지다. 산업 등 분야에서 사용하는 단편적인 단어 표현을 바꾸기에 앞서 근본적인 체계 변화를 이루자는 의도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의 경우 일반적으로 남성명사에 특정 어미를 붙여 여성형으로 만드는데, 남성형 명사가 여성형보다 우선한다. 가령 남성 한 명과 여성 한 명을 묶어 ‘친구들’이라고 표현할 때 ‘친구’의 남성형(ami)에 복수형 어미인 ‘s’를 붙여 ‘amis’라고 쓰며, 여성형 복수(amies)는 친구 중에 남성이 없을 때만 사용한다. 이에 대한 성 중립 철자법은 가운뎃점을 이용해 남성형과 여성형을 함께 표기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친구들’은 항상 ‘ami·es’로 표기하게 된다.

그러나 반발이 만만찮다. 최고 권위의 프랑스어 수호기관인 프랑스 학술원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성명을 내고 “이 ‘포괄적’ 일탈 앞에서 프랑스어는 치명적인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이 새로운 방식은 읽고 쓰기 어렵다”면서 “국가는 미래 세대에게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프랑스 교육부까지 나서 전국의 학교에 성 중립 철자법인 가운뎃점 사용을 중단하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프랑스어가 파괴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독일어협회(VDS)는 지난해 독일에서 논의되고 있는 성 중립 철자법에 대해 “독일인의 말과 정신, 그리고 궁극적으로 독일 사회를 파괴할 것”이라며 “급진적 여성주의자들과 퀴어 이론가들이 관련 담론을 장악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독일에서는 최근 관련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성 중립 언어 사용에 대해 반대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역시 독일어의 문법 파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이유였다.

■ 성 중립 언어로 바뀌는 표현들

●신사 숙녀 여러분(Ladies and gentlemen) → 친애하는 승객 여러분(Dear guests) /루프트한자

●아내(wife), 남편(husband) → 배우자(spouse) 혹은 파트너(partner) /네덜란드 공식 문서

●프레시맨(freshman) → 1학년(first-year)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어머니(mother), 아버지(father) → 부모1(parent1) , 부모2(parent2) /프랑스 학생 서류

●체어맨(Chairman) → 체어(Chair) /포드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