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히스패닉에 더 가혹한 ‘기후 재앙’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올해 마지막 메이저 테니스 대회인 US 오픈이 열리고 있는 미국 뉴욕의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센터 앞에서 1일 허리케인 아이다가 쏟아붓는 폭우를 뚫고 한 관람객이 아이를 안은 채 달려가고 있다. 이날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는 1869년 기상관측 시작 이래 152년 만에 최대 강수량을 기록했다. EPA 연합뉴스

美 환경보호청 보고서
지구 온도 2℃ 상승때 사망확률
흑인이 다른 인종보다 40% 높아
건설·농업 종사자 많은 라틴계
혹서땐 근로시간 줄어 임금 타격
원주민·아시안도 백인보다 취약

사회구조적으로 약한 고리에 놓여있을 수밖에 없는 소수 인종이 이상기온에 따른 기후 위기에 더 취약하며, 회복력도 낮다는 사실이 미 연방기관 보고서를 통해 통계적으로도 확인됐다. 소수 인종이 역사적으로 거주해왔거나 이주 후 터를 잡은 지역에서 기후변화에 따라 생존을 위협받거나 임금이 줄어들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2일 워싱턴포스트(WP) 등은 이날 미 환경보호청(EPA)이 소득·교육 정도·인종·민족·연령 등 6개 기준에 따라 기후 변화가 취약 계층에 미치는 영향을 처음으로 조사·발표한 보고서를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2도 상승한다고 가정할 때 흑인은 다른 인구 집단보다 사망 확률이 40%나 더 높다. 흑인들은 특히 공기 질 저하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 환경이 나빠짐에 따라 흑인들은 다른 인구 집단보다 적게는 41%에서 많게는 59%까지 더 많은 사망자를 낼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연령대별로 나눠보면 65세 이상 노인들은 폭염·산불 등에 따른 대기 중 그을음이나 미세먼지 등으로 숨질 가능성이 41~60% 높고, 17세 이상 아이들은 소아 천식 진단을 받을 확률이 34~40% 더 크다. EPA는 미국 전체에서 대기 오염으로 인한 연간 조기 사망자 수가 2100명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건설업·농업 분야 종사자가 많은 라틴계 미국인의 경우 혹서에 따라 근로시간이 줄어들면서 임금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큰 지역에 거주하고 있을 확률이 43% 높았다. 원주민들에게서도 이 확률은 37% 높게 나타났다. 이 밖에 원주민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홍수 등이 발생하면 침수될 가능성이 큰 지역에 거주하고 있을 확률이 48% 더 크며, 이는 아시아계에서도 23%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마이클 리건 EPA 청장은 “오늘날 우리가 느끼고 있는 기후변화의 영향은 더욱 악화할 것이며, 이에 대한 대비·대응 능력이 부족한 이들이 불균형적으로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버드대 기후 센터의 아론 번스타인 박사는 기후 변화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비유하며 “불평등에 기생하는 구조적 충격”으로 표현했다.

지구는 이미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1.1도 더 따뜻해졌고, 2030년대 초까지 기온이 1.5도 더 상승할 것으로 예상돼 이들 취약 계층이 처한 생존적 위험은 이미 눈앞에 있다. 미국에선 이미 폭염으로 인한 초과사망(기대치를 뛰어넘은 사망)이 연간 8500명 이상씩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2050년에는 6만 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상 기온에 따른 생산성 저하로 미국이 입는 연평균 손실은 연평균 1000억 달러(약 116조 원)에 달한다. 리건 청장은 “기후 변화 대응에 보다 공정한 조치가 시급하다”며 “EPA는 모두를 위한 ‘환경 정의’를 실현하는 데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했다.

장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