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표 이면의 세계엔 깊은 철학이… ‘새로운 귀’ 열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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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멈춘 순간 진짜 음악이 시작된다 | 오희숙 지음 | 21세기북스

“방탄소년단(BTS)은 그동안 노래와 춤을 통해 사회의 현실과 젊은이들의 고민에 공감하고 위로와 함께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왔는데, ‘봄날’에서는 세월호에 대한 마음이 노래 깊숙한 곳에 담겨 있는 듯하다.”

현대음악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미학의 관점에서 탐구해 온 오희숙 서울대 작곡과 교수는 새 책 ‘음악이 멈춘 순간 진짜 음악이 시작된다’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음악과 사회의 다이내믹한 관계를 설명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노란 리본을 건 놀이기구와 푸른 바다 등 ‘봄날’의 공식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시각적 요소, 절절한 그리움을 담은 가사, 느리게 반복되는 서정적 선율을 추모의 마음과 연결 지은 것이다.

여기에는 독자들이 음악을 통해 소리의 세계뿐 아니라 소리 이면의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소망이 담겨 있다.

음악을 소리의 예술을 넘어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음악과 천체의 질서를 연결지은 피타고라스가 음악에 대한 형이상학적 접근의 문을 열었다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음악의 본질을 특정 대상의 모방으로 보거나(모방미학) 감정의 표현으로 보는(감정미학) 시각을 제공했다.

이후에도 이마누엘 칸트와 게오르크 헤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프리드리히 니체, 테오도어 아도르노 등 지성사를 빛낸 수많은 사상가가 자신의 철학적 체계를 바탕으로 음악에 대해 논했다.

저자는 책에서 클래식 음악부터 21세기 대중음악까지 구체적인 음악작품에 담긴 인문학적 배경과 철학적 사유를 설명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으로 알려진 조반니 비탈리의 ‘샤콘 G단조’를 통해 음악이 어떻게 듣는 이의 감정을 사로잡는지 논하는가 하면 이날치밴드의 ‘범 내려온다’를 통해 크로스오버(cross-over)로 표현되는 글로벌 시대의 ‘경계 허물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공지능(AI) 작곡가 이봄의 ‘그리운 건 모두 과거에 있다’를 통해서는 예술과 창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돌아간다.

책에 언급된 음악작품과 미학 이론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겐 저자의 안내대로 음악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따라가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음악이 멈춘 순간 진짜 음악이 시작된다”는 신비한 경험을 나누고 싶은 음악 애호가에겐 ‘새로운 귀’를 가져다줄 만한 책으로 보인다.

책에 제시된 QR코드를 이용해, 수록된 주요 음악을 들으며 차근차근 의미를 음미하면서 읽을 것을 권한다. 이 책은 ‘서울대에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라는 표제를 단 21세기북스 ‘서가명강’ 시리즈의 19번째 책이다. 316쪽, 1만70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